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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창업주인 고 신격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신상구 | 2020.02.12 11:12 | 조회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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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 신격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의 영산신씨(靈山辛氏) 문중에서 사업으로 가장 먼저 성공한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지난 2020년 1월 19일 오후 4시30분쯤 별세했다. 향년 99세로 별세한 신격호(辛格浩)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 유학 중 소규모 식품업으로 출발해 한일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의 대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일본에서 먼저 기업가로 성공한 신 명예회장은 한일 수교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롯데쇼핑·호남석유화학 등을 잇달아 창업하면서 롯데그룹을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만들었다.
   신 명예회장은 1922년 10월 4일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 배움을 열망하던 그는 1942년 관부 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떠나 신문·우유배달 등으로 고학 생활을 시작했다. 남다른 부지런함으로 외지에서 문학도의 꿈을 불태우던 청년 신격호는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성실과 신용으로 극복한 불굴의 한국인이었다. 평소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 보아온 한 일본인 투자자의 출자로 1944년 커팅 오일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움으로써 기업 경영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폭격으로 공장이 전소되는 등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뛰어난 안목·신용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도전해 오늘날의 롯데 신화를 창조해 냈다. 롯데그룹은 국내 5대 그룹, 총 81개 계열사, 총 자산 93조원, 시가총액 25조원에 달하는 국내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
   롯데그룹의 시작은 ‘껌’ 제조업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와세다 고등공업학교 화학과를 졸업한 신 총괄회장이 1948년 껌 사업에 뛰어들면서 롯데그룹이 탄생했다. 직접 리어카를 끌면서 팔기도 하던 신 회장의 껌은 일본에서 인기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후속 제품들도 잇달아 히트했고,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자 껌은 일본에서 갑자기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이후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 ‘롯데’가 탄생했다. 당시 문학을 좋아했던 신 명예회장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회사명을 따왔다.
   그는 천재적인 마케팅 감각으로 사업을 이끌었다. 당시 일본에서 껌의 핵심 타깃은 어린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꿰뚫고, 풍선껌을 작은 대나무 대롱 끝에 대고 불수 있도록 풍선껌과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했다. 변변한 장난감이 없던 터라 롯데의 풍선껌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껌이라는 상품 자체가 식품이라기보다는 심심한 입을 즐겁게 해주는 장난감이라는 제품의 핵심가치를 간파한 것이다.
   이벤트와 미디어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어당긴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놓고 당첨된 사람에게 1000만 엔을 준다는 광고를 내놓기도 했다. 이 광고는 롯데 껌을 사기 위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상점 앞에 줄을 서도록 만들었다. 이런 기발한 마케팅 기법을 고안해내고 자신 있게 밀어붙인 사람이 바로 신 명예회장이었다.
   이후 롯데는 껌에 이어 초콜릿 시장을 제패하며 종합 제과회사로 도약을 준비한다. 신 명예회장 1961년 일본 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가 초콜릿으로 대체될 기미가 보이자 초콜릿 생산을 결단한다. 초콜릿 산업은 과자 사업 중에서는 중공업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제조방법이 까다롭다.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오면서 초콜릿 시장을 장악했다. 이것이 롯데가 종합 제과사로 부상하는 밑거름이 됐다. 이후 롯데는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거듭 성공했다.일본에서 사업을 확장하던 롯데가 한국에 진출한 건 일본에 롯데가 설립된지 19년 만인 1967년이다. 1965년 한·일 수교 이후에나 일본 자본의 한국 투자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1967년 한국 롯데제과 설립 당시 신 명예회장은 “새롭게 한국 롯데 사장직을 맡게 되었다. 조국을 떠나 있었던 관계로 서투른 점도 많겠지만 성심성의껏 가진 역량을 경주하겠다”면서 “기업 이념은 품질본위와 노사협조로 기업을 통해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신 명예회장의 꿈은 조국 대한민국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한·일 수교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리자 ‘기업보국’(企業報國)이라는 기치 아래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해 투자를 시작했다.
   롯데는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하고 이후 한동안 식음료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73년에는 칠성한미음료를 인수해 ‘롯데칠성음료’를 설립했다. 이후 아이스크림, 햄, 우유 사업에 뛰어들었고 국내 최고 패스트푸드 브랜드인 롯데리아까지 론칭했다.
   한편, 롯데는 그동안 경험이 없었던 호텔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973년 반도호텔 인수가 그 시작이었다. 롯데의 호텔 사업 진출과 관련해 당시 박정희 정권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얘기다. 호텔롯데는 현재 롯데그룹의 지주사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호남석유화학과 롯데건설 등으로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하였다. 특히 관광 불모지에 대규모 호텔업 투자를 통해 한국 호텔·관광 사업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롯데호텔은 1973년 당시 동양 최대의 특급호텔로 장장 6년간의 공사 끝에 문을 열었다. 지하 3층, 지상 38층의 고층 빌딩으로 1000여 객실을 갖춘 롯데호텔 건설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 5000만 달러를 투자 받았다.
   호텔 사업 구상은 신 명예회장과 롯데그룹에 대단한 모험이었다. 호텔 산업기반이 취약한데다 국내에 외국손님을 불러올 국제 수준의 관광 상품도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관광업 자체의 민간투자가 저조한데다 산업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의 특성상 관광입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신 명예회장의 신념이었다. 이러한 신 회장의 결단으로 탄생한 롯데호텔은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한국 호텔로는 처음으로 해외 체인을 오픈할만큼 성장했다.
   롯데는 1970년대 호텔롯데에 이어 1979년 롯데쇼핑(現 롯데백화점 본점)을 설립하며 국내 유통시장을 이끌기 시작했다. 신 명예회장은 국가 경제의 발전과 유통업 근대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백화점 사업에 도전했다. 서울 중구 소공동에 롯데쇼핑센터라는 백화점이 들어선 것도 이때다. 롯데쇼핑센터 건립공사는 1976년 시작해 1979년 12월에 완료됐다. 규모는 연면적 2만 7438㎡, 영업면적 1만 9835㎡에 지하 1층, 지상 7층에 이르렀다. 이는 기존 백화점에 비해 2~3배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롯데쇼핑센터는 개점 당시부터 고객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며 이후 우리나라 1위 백화점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이후 롯데는 1979년과 1989년에는 각각 롯데시네마와 테마파크인 롯데월드를 세우는 등 문화 사업에도 진출했다. 2000년대 들어서며 각종 인수·합병(M&A)을 진행, 사세를 급격하게 확장했다.
   롯데의 현재를 이룩한 고 신격호 명예회장은 주민등록상으로는 1922년생이지만 실제로는 1921년생으로 지난해 10월 31일 백수(白壽·99세)를 맞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 등이 있다.
                                                                                   <참고문헌>
   1. 안승진,  "‘롯데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 향년 99세로 별세", 세계일보, 2020.1.19일자.
   2.  이윤화,  "롯데와 함께한 99년…그가 걸어온 길",  이데일리, 2020.1.20일자.  
                                                                         <필자 신상구 국학박사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부친 신종순(辛鍾淳), 모친 유옥임(兪玉任) 사이의 5남 2녀 중 장남
   .아호 대산(大山) 또는 청천(靑川), 본관 영산신씨(靈山辛氏) 덕재공파(德齋公派)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2)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8)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 종로구 재동지점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아우내 단오축제』(1998),『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2019.3.15),『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5권.  
   .주요 논문  :「대전광역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2012),「서정시인 정지용의 생애와 문학세계」(2016),「백제의 건국과정과 백제초도 하남위례성의 위치비정 논쟁」(2018) 등 105편
   .주요 발굴  :  민촌 이기영의 천안 중앙시장 3·3항일독립만세운동 기록(2006)
                         포암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2007)  
   .수상 실적 : 예산군수 감사장, 대천시장상(2회), 천안시장상(2회),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2회) 교육부장관상(푸른기장),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문학 21』시부문 신인작품상,『문학사랑』·『한비문학』 문학평론 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동아일보·경향신문·한국일보·서울신문·서울일보·신아일보 등 중앙 일간지, 대전일보·충청일보·충청투데이·중도일보·동양일보·금강일보·중부매일·충남일보·중앙매일·충청타임즈·대전투데이·충청신문·충북일보·우리일보 등 지방 일간지, 충남시사신문·천안일보·충남신문·등 주간신문, 아산톱뉴스·천안일보·디티뉴스 등 인터넷신문 등에 수백편의 칼럼 기고.
   .30년 간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환경운동 전개, KBS 중앙방송국 라디오 <논술 광풍>프로 출연, STB 상생방송 <홍범도 장군> 프로 출연, KBS 대전방송국·MBC 대전방송국·CJB 청주방송국 라디오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발굴> 프로 출연    
   .대전 <시도(詩圖)> 동인,『천안교육사 집필위원』,『태안군지』집필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동양일보 동양포럼 연구위원, 통합논술 전문가, 평화대사, (사)대한사랑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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