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안양만안도장 이혜숙 도생(여, 57세)
따뜻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저는 충남 부여에서 1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열심히 일하시며 남들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아주 인자하신 분들이었습니다. 당시 다른 가정의 아이들은 다들 형편이 어려워 일찍 공장에 다니며 일하기도 했지만, 저는 부모님의 따뜻한 가정 환경과 경제적 뒷받침 아래 큰 어려움 없이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큰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아버지는 형님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보증을 많이 서 주셨는데, 그것이 고스란히 빚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착하신 부모님은 그것을 돌려받지 못한 채 큰 피해를 입으셨는데, 결국 어머니는 우울증이 생겼고 아버지는 그 영향으로 폐암에 걸려 1년 정도 앓다가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큰집과는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특히 장녀인 저를 예뻐하셔서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매년 4월 초파일이면 항상 아버지를 따라 절에 갔었는데, 그때는 어린 마음에도 연꽃이 너무 좋았고 부처님의 인자하신 모습이 좋았습니다.
지금은 가족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거기엔 연유가 있었습니다. 원래 큰집에서 먼저 기독교 신앙을 하고 있었고 제가 태어났을 때 우리 가족들은 교회에 다니고 있진 않았다고 합니다. 제 위로 언니, 오빠가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일찍 죽었고 저도 태어난 지 채 100일이 안 되어 병원에서 포기하라고 할 정도로 좋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큰집에서 마지막으로 목사님을 모셔 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고 났더니 죽을 줄 알았던 아기가 계속 살아 있는 것을 목격하고 이후 가족들은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어머니와 동생들은 교회에 나가고 있습니다. 저도 중학교 때까지는 교회를 다녔는데 믿음이 있어 갔다기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그저 좋았습니다. 그러다 집에서 떨어진 보령 지역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자연스럽게 교회를 안 다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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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에도 홀로 지낸 아버지 제사
그런데 가족들이 교회를 다니고부터 아버지 기일이 돌아와도 제사를 지내지 않고 기도만 드리고 말았습니다. 큰집에 제삿날이 되어 가서도 빙 둘러앉아 예배만 보다 돌아오는 일을 겪으면서 제 마음속에는 제사를 지내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크게 자리하였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집이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라도 아버지께 제사를 드려야겠다 생각하여 제삿날이면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음식을 챙겨 아버지 산소에 가서 미리 성묘를 몰래 하고 왔습니다. 결혼 후에도 그러한 마음은 변하지 않아 무속인에게 가서 저 혼자 조상님들과 아버지 천도제를 두 번이나 올려 드렸습니다.
결혼 초기에는 남편의 사업이 잘되어 동생들도 모두 우리 집에서 지내다 결혼하여 독립할 정도로 여유있게 잘살았습니다. 그러다 남편의 사업 실패와 잇따른 옷 매장 인수 사기를 당하며 빚을 떠안게 되는 일이 벌어지자, 술로 세월을 보내던 남편 대신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힘들게 옷 가게 일을 하며 밤 11시가 되어야 퇴근을 하였고 주말도 없이 오직 아이들만 생각하며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인정을 받으면서 좋은 위치의 매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술에 빠져 더 이상 일어설 의지가 없었기에 결국 이혼을 하였습니다. 정말 하루하루 일을 하는 것 말고는 저에게 다른 일은 사치와 같았으므로 여가나 여행, 종교나 취미도 아예 관심을 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건강, 자녀 양육, 자금 융통을 위해 보험을 관리해 주는 설계사에게 의지를 많이 하며 지냈습니다. 저를 좋게 보던 설계사의 권유로 보험업으로 업종을 바꾸었고, 이렇게 종교나 신앙에 관심조차 없이 지내던 저에게 정말 우연하게 상제님 진리와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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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시작된 진리와의 만남
보험사에서 많이 믿고 의지하던 선배 언니가 지인을 만나는데 같이 보자고 했습니다. 그때 우연하게 자리를 같이하게 된 지인이 바로 저를 상제님 진리로 인도해 주신 홍순덕 포감님이십니다. 홍 포감님은 선배 언니를 상제님 진리로 인도한 분이었는데, 처음 만났는데도 요즘 사람들 같지 않게 정말 얼굴이 맑고 깨끗하게 느껴졌고 고상한 인품이 느껴지는 분이라 호감이 갔습니다. 선배 언니를 보러 왔는데 선배는 일이 바빠 금방 회사로 들어갔고 우리 두 사람은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홍 포감님은 선배와는 증산도를 함께 신앙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 나는 증산동에 살고 있는데 그 증산이 이 증산과 같은 뜻인가?’ 하며 호기심이 갔습니다. 그리고 증산도의 증甑 자가 한자로 떡시루라는 뜻이라 하였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사는 동네를 지나며 ‘시루 모양은 아닌 것 같은데?’라며 궁금했었는데, 이런 공통 관심사로 인해 이야기가 잘 진행되었습니다. 증산도가 상제님을 신앙하는 곳이라고 소개하며 우리 한민족의 고유한 신앙을 하는 곳이니 도장에 한번 초대하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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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정화수 기도 모습이 떠올라
처음엔 증산도 이야기를 듣고 종교에는 관심이 없던 터라 솔직히 회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천도제나 굿을 돈을 많이 들여 여러 번 했었는데 이젠 돈도 없고 이런 일에 또 관심을 갖는 게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증산도란 이름이 생소하여 혹시나 하고 사무실에 들어와 물어보니 증산도를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후 홍 포감님과 언니 동생 사이로 통화도 가끔 하며 지냈습니다.
도장에 한번 와 보라고 해서 어떤 곳인지 가 보자는 생각에 처음 방문했는데 가서 보니 솔직히 성전이며 예법 등이 많이 생소했습니다. 그런데 송영대 수호사님과 대화를 하다 보니 옥황상제는 어릴 땐 많이 들어 봤고, 어린 시절을 더듬어 생각해 보니 친할머니가 깜깜한 밤에 큰 장독 위에 사발을 올려놓고 정화수를 매일 모시는 걸 보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어릴 땐 그 모습이 무섭다고만 생각했는데 가족들을 위하여 정성을 다해 기도드리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조상님의 음덕으로 상제님을 만난다는 말씀에 어쩌면 할머니께서 저를 상제님 전으로 인도해 주셨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지구 가열화, 자연 재앙, 전염병, 전쟁 등이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환절기에 일어나는 변혁이 맞고 상제님이 성자를 내려보내신 하느님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방문하여 수호사님께 교육을 받을 때는 진리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습니다. ‘단군신화는 잘못된 것이며 역사의 일부분만 알고 있는 거구나! 그동안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 알려고도 안 했고 궁금해하지도 않으면서 하루하루 넘기기 바빴고 귀찮아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수를 모시던 할머니도 떠올랐고 조상을 잘 모셔야 된다는 생각도 들어 청수 그릇을 구입해 집에서 청수를 모시기 시작했습니다. 자녀들은 의아한 반응이었습니다. ‘집에 성경책이 있기를 하나, 달마도가 있지를 않나, 점집에도 간다고 하지 않았나? 이번엔 또 뭐야?’라는 식의 반응이었지만, “엄마가 기도하는 거야!”라고 한마디로 딱 잘라 말했습니다. 상생방송을 보고 있으니 집에서 이상한 것 좀 하지 말라고 거부감을 표하여 더 이상 방송은 틀지 않고 혼자만 유튜브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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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도사님 말씀으로 받은 진리 확신
얼마 전에는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 환단고기 북콘서트에도 참석하여 종도사님 말씀을 들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재밌고 듣는 내용이 다 흡수되어 더욱 상제님 진리와 환단고기의 역사가 인류의 뿌리 문화이며 참진리임을 확신하였습니다. 요즘은 도장에서 치성도 참석하고 교육도 듣고 있으며, 청소나 천도식 음식 봉사 등 도장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너무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수행을 하고 도장에 다녀가면 마음이 너무 편해집니다.
아직은 부족하고 많이 모자라지만 입도 후에도 지금의 이 마음으로 하나씩 더 열심히 배워 나가며 홍 포감님처럼 저도 상제님 진리를 꼭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여 함께하고 싶습니다. 상제님, 태모님,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과 조상님들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상제님 진리로 인도해 주신 홍 포감님과 진리를 가르쳐 주신 송 수호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열심히 참여하고 진리를 전하며 천지의 은혜에 보은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