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안양만안도장 민일진(남, 58세)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아
저는 중국 요령성 환인현에서 태어난 교포입니다. 할아버지는 원래 경북에서 사셨는데 아버지가 할머니 배 속에 임신 중인 상태에서 중국으로 건너가셨다고 합니다. 저는 중국에서 나고 자라서 학교도 다녔지만 어린 시절부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았고 큰집에서 제사를 모시면 조상님을 모신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참석하였습니다.
나이가 들어 결혼 시기가 되자 중매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부부가 함께 농사를 짓기도 하고 장사도 하며 예쁜 딸도 낳았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여유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의논 끝에 한국에 가서 일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상제님과 조상님을 모신다는 증산도
한국에 와서는 여기저기 직장에 다녔고 식당에서도 일을 하였으며 횟집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아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 중국에 있던 딸이 한국으로 들어와 대학을 다니게 되었으므로 여러 여건을 감안하여 경기도 군포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아내인 이정희 도생은 식당에 일을 다니고 있었는데 평소에도 나이 40세만 넘으면 어떤 것이든 신앙을 가지겠다고 말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절대 안 다니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던 아내가 정말 어디를 믿고 다닌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일주일 중 수요일 저녁, 일요일 아침에 증산도 도장에 다닌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 불교는 들어 봤어도 증산도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뭐 하는 곳이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상제님을 모시고 조상님을 모시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증산도가 생소하였던 저는 요즘 세상이 하도 뒤숭숭하니 걱정 반으로 너무 빠지지는 말고 취미 생활로만 다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집에서 아내는 상생방송을 가끔씩 시청하였고 제게도 지나가듯 좋은 내용이니 보라고 하여 가끔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원래 종교는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친해지면 술도 한잔 같이 하며 정을 나누는 것이 삶의 낙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당신이 다니는 것을 반대는 안 하겠는데 나에게 강요하지는 말라고 하였습니다. 증산도도 종교라 생각해서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가정에서도 청수를 모셨지만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남편 잘되라고 기도해 준다는 말에 큰 반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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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조상 천도식에 감동을 받다
그러던 중 아내 조상님 천도식을 할 때, 조상님을 위한다고 하니 믿음이라기보다 술 한 잔 올리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도장에 참석을 해 보았습니다. 처가 조상님 천도식이라 아내는 언니, 남동생 부부, 딸, 사촌 오빠까지 다 초대하였으며, 처음 배우는 사배심고 절을 올리고 천도식 예법대로 주문도 함께 읽었습니다. 아내 집안 조상님들 천도식을 위해 많은 도생님들이 함께 오셔서 내 일처럼 도와주시고 참여해 주시는 모습에 감동도 받았습니다.
천도식을 마치고 음복을 하며 도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처음 만난 분들인데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 것처럼 다들 너무나 다정히 잘 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방 친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내 이정희 도생의 구역포감님이신 홍순덕 도생님이 늘 제 아내를 친언니처럼 잘 챙겨 주시고 신앙으로 이끌어 주고 계셔서 저도 누님 동생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달리 수호사님을 비롯한 도장 도생님들에게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과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중국 교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도생님들은 정말 가족 같은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이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태을궁 행사에도 참여해 봤고, 집에 수호사님과 도생님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함께 하며 증산도 하시는 분들과 신앙을 떠나 인간적인 정을 더 쌓아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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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뿌리를 찾아 준 또 한 번의 감동
그러던 중 중국에 계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슬픔이 밀려왔지만 중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결국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함이 늘 마음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내 조상님 천도식 후에도 상제님 신앙이나 우리 조상님 천도식에 대한 마음은 딱히 들지 않았던 터라 아버님 천도식을 올려 드려야겠다는 마음도 처음엔 생기지 않았습니다.그런데 아내가 계속 신앙을 하면서 아버님 천도식을 해 드리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까지 신앙에 대한 마음이 크게 열리지 않았기에 저의 반응은 밋밋하였습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아내는 아주 강력하게 말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몰라도 내 딸은 개벽기에 살려야 되니까. 당신이 민씨 종자이니 민씨 조상님 천도식은 해야 되겠다!”라고 밀어붙이는 겁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평소에 아버님께 죄송한 마음이 컸는데 천도식을 올려 드리며 그 불효한 마음을 용서받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천도식을 할 마음을 먹고 수호사님과 상의하며 하나씩 준비를 해 나갔습니다.
천도식 준비를 하면서 무엇보다 큰 감동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왔기에 그동안 제대로 몰랐던 고조부님부터 윗대 조상님들의 존휘尊諱를 수호사님이 제적등본을 하나씩 떼고 확인하시며 다 찾아 주셨습니다! 아! 이래서 증산도가 뿌리를 찾는 곳이구나 하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마치 상장을 받은 아이가 정말 기뻐서 그것을 들고 계속 쳐다보는 것처럼 조상님들 명단을 한참 바라보았고, 집에 잘 보관하여 가족과 친지들에게도 알려 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천도식에 참석하려고 마음을 쓰고 있던 제가 덜컥 코로나에 걸려 천도식 참여를 못 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천도발원문도 읽어 드리려고 준비를 다 했는데 코로나로 참여를 못 하다니... 저는 마음이 너무 무겁고 안타까웠습니다. 아내가 대신 직선조 천도식을 올려 주고 저 대신 천도발원문도 읽어 드렸는데 너무 고마웠습니다. 천도식을 계기로 증산도에 대한 생각이 조금 더 열리기 시작했고, 조상님을 도장에 모셔 놓았으니 도장 천도식 때나 보은치성 때는 빠짐없이 참여하여 조상님들께 잔을 한 잔 올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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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과 조상님 은혜에 보은하는 마음으로
이후 가정에 상제님 태모님 어진을 모시고 가정치성도 함께 하였고 행사에도 아내를 따라 참석을 해 보았지만, 여전히 아직까지는 진리적이나 신앙적으로 마음이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조상님에 대한 마음과 우리의 역사를 바로 찾는다는 그 의미는 좋아서 증산도가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입도를 결심하는 결정적 계기가 있었는데, 홍 포감님 남편 공중환 도생님의 조상 천도식이었습니다. 평소에도 만나면 반갑게 맞이해 주시던 큰형님 같은 분이었는데 조상 천도식을 한다기에 당연히 참여해서 축하해 주었습니다. 천도식 후 도담을 통해 신앙의 좋은 점. 부부 신앙의 좋은 점 등을 말씀해 주시는데 크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 후 가정도방 어진을 추가하며 가정치성을 모시는 자리에서 입도식도 동시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부산 벡스코 〈개벽 문화 북콘서트〉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증산도 진리 공부가 아직은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앞으로 계속 참여하고 상생방송도 즐겨 보면서 시간 나는 대로 공부를 하여 상제님과 조상님 은혜에 보은하는 도생이 되겠습니다. 앞으로 부족하지만 아내와 함께 부부 신앙을 잘하면 딸과 사위도 시간이 지나 함께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증산도에 입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신 수호사님, 홍 포감님, 공 도생님 모두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반대를 잘 참아 주고 기다려 준 아내 이정희 도생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나와 가족의 건강과 무탈함을 기도해 주는 제 아내가 아니었다면 조상님도 상제님도 제대로 찾지 못했을 겁니다. 또 도장의 다정한 형님 도생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더 노력하고 참여하며 보은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