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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의 기원과 한민족과의 형제관계 (1)

2023.07.21 03:08 | 조회 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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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의 기원과 한민족과의 형제관계 1


전원철(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



최근 6.25 보훈의 달이기도 한 작년 6월 에르도안 정부의 ‘터키’는 국가와 민족명을 ‘튀르키예(Türkiye)’로 바꾸었다.


1️⃣ ‘터키’와 ‘튀르키예’ 국명의 어원인 ‘투르크’의 뜻


이 나라의 새로운 국명인 '튀르키예’라는 말의 뿌리는 '튀르크(Türk)’에서 온다. 이 민족칭의 기원을 보자. <주서周書> 이역하(異域下)에 따르면, 돌궐의 선조는 알타이산(金山)의 양지쪽에 살며 조잔(茹茹, 원래 조잔柔然, 곧 朝鮮)의 철공(鐵工)으로 살았다. 그들이 살던 알타이산(金山) 모양은 투구(兜鍪)와 비슷한데, 그 마을 말(其俗)로 투구를 「투룩(突厥)」이라고 하여 이 때문에 이로써 이름(號)으로 삼게 되었다” 고 한다.


<미국유산영어사전, The American Heritage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에 따르면, 이 말은 옛 투르크어로 ‘힘 세다(vigorous, strong)'를 뜻하며, 예전에 보통 오늘날 튀르키예인들과 그 전왕조인 오스만인들(곧 오스만 투르크인)을 일컫는 말로 쓰였다.


그 옛날 이 민족의 이름은 <북사北史> 돌궐전에 기록된 바, 한자로는 이시바라 카간(沙缽略可汗) 이 수(隋) 나라 문제에게 보낸 “하늘이 낳은 대 투르크 천하의 어질고 거룩한 천자 일쿨룩 샤드(백성의 용감한) 막하시바라 카간天生 大突厥 天下賢聖 天子 伊利俱盧設 莫何始波羅 可汗”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돌궐(突厥)'이다.


투르크인들이 735년경에 세운 자신들의 카간인 빌게 카간의 비문에서는 자신들의 족칭을 ‘투르크 보둔(투르크 백성)’이라고 기록했다. 이는 투르크학자 이용성에 따르면 ‘괵 튀르크’에게만 적용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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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터키'라는 국명은 튀르키예 학자 일베르에 따르면 이탈리아인들이 “투르키아Turchia” 또는 “투르크메니아Turcmenia”라고 하고, 독일인들이 “투르카이Turkei”라고 부르다가 16세기에 영어로 “터키Turkie”라고 한 것에서 왔다고 한다.


그럼 금번에 국명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케임브릿지영어사전>에 따르면, 영어로 Turkey는 소문자로 쓰면 ‘칠면조’ 곧 튀르키예어로는 ‘인도’를 뜻하는 말의 소문자 ‘hindi’와 같은 새를 뜻하고 또 속어로는 ‘실패작, 바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단, <영어어원사전(www.etymonline.com)>은 영어에서 Turkey가 ‘칠면조’를 뜻하는 이유는 마다가스카르 원산의 칠면조를 튀르키예를 거쳐 유럽에 처음 도입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칠면조’나 ‘겁쟁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이 튀르키예인들의 입장에서 싫은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여러 해 오랜 논의를 거친 뒤 마침내 국명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제 필자는 형제국 사람들에게 한 마디 전한다. “Doğru asli ülke adını benimseyen Türk kardeşlerimize tebrik ederiz! (올바른 국명을 채택한 튀르크 형제들에게 대해 축하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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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형제민족’인 튀르키예인들과 코렐리(Koreli: 한민족)


우리는 흔히 ‘튀르키예인들과 코렐리는 형제민족’이라고 한다. 왜일까? 한 가지 이유는 튀르키예가 우리 한국전쟁 당시 최대 1만 5천에 이르는 군사를 보내 대한민국을 도와준 때문이다. 튀르키에인들은 미국 바로 다음으로 즉시 병사들을 보내 우리를 도운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전쟁에 도움을 준 덕분이라면, 당시 우리에게 도움을 준 미국, 카나다, 이디오피아 등 16개 국가들 모두가 우리에게 ‘형제국’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왜 튀르키예만 형제국이라고 하는가? 이들 15개 다른 나라들과 튀르키예가 우리민족과 가지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바로 그렇다! 튀르키예의 투르크 민족과 한민족은 한국전쟁 이전부터 애초에 역사-민족적으로 형제민족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관계의 역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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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이東夷의 후손인 흉노와 거기서 갈라져 나온 투르크(突厥)

<주서> “이역 하” 전에 따르면 투르크(突厥)인 최초의 왕조는 ‘아사나(阿史那)’ 씨 가문이고, 이 가문은 ‘흉노에서 갈라져 나온 씨앗(匈奴之別種)’이다.


<한서(漢書)> 흉노전(匈奴傳)에 따르면, 돌궐의 선조인 흉노는 하후씨(夏后氏)의 후손이다. 곧 하나라를 세운 하우(夏禹)의 후손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하우는 ‘동이東夷’ 사를 숨기기 위해 이 말을 극도로 삼가하였던 사마천도 자신이 쓴 <사기> 오제본기(五帝本紀)와 하본기(夏本紀)에서 최초로 ‘동이(東夷)’라고 기록한 ‘곤(鯀)’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또 <맹자(孟子)> “이루장구 하”에서 보듯이, 맹자가 직접 ‘동이인(東夷之人)’이라고 부른 순(舜)임금도 자기 자신과 같이 동이인 아버지를 둔 하우에게 자신의 ‘천자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렇다면 하나라는 동이의 나라이고, 그 후손인 흉노도 동이東夷의 후손이다. 그 나라의 백성이 설사 여러 종족으로 이루어졌더라도 적어도 왕가와 이를 지탱해준 다수의 귀족, 백성들이 동이인이엇던 사실을 미루어 알 수 있다.


한편 <후한서> 동이전이 명백히 밝히고 있듯이, 우리 코리안들의 선조인 ‘예濊、맥貊、한韓, 부여국夫餘國, 고구려高句麗, 동옥저東沃沮, 삼한三韓’ 등이 모두 하나로 ‘동이東夷’라고 불린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며, 나아가 “군자의 나라라, 공자도 구이(九夷)에 살고 싶다.”고 한 바 있듯이, 우리도 이 고대의 우리 족칭을 자랑으로 삼는다.


동쪽사람을 뜻하는 ‘동이東夷’의 ‘이夷’는 우리말 ‘이 이, 저 이(이 사람, 저 사람)’ 하듯이 ‘사람’을 뜻하는 다른 말이다.


한편 우리와 친족관계인 투르키예 말로 ‘동이東夷’의 ‘동東’은 ‘Doğu’라고 하는데, 이는 ‘Güneş doğu-dan doğ-du (해가 동-에서 떴-다)’는 말에서 보듯이 동사원형 ‘뜨-다(doğ-mak)’의 어근 ‘doğ-(뜨-)’에 소리 부드러운 끼임새 꼬리말 ‘-u’가 붙은 말이다.


결국 ‘Doğu (東) - yi (夷, 사람)’의 후손이 바로 코렐리(코리안), 흉노와 투르크인들이다. 그렇다면 동이의 후손인 코리안들과 흉노, 그리고 흉노에서 갈라져 나온 씨앗(별종) 투르크인들은 모두 애초에는 한 선조의 후손, 형제민족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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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서양 사서 속의 흉노-훈과 투르크

흉노는 4~6세기 유럽사서에서는 ‘훈(Hun, Khun, Hunaya)’으로 불린다.

그런데 흉노에서 돌궐이 나왔는데 이들은 유럽사서에서는 ‘투르크(Turc, Turque)’로도 자주 불렸다. 6~10세기 유럽(그리스-로마) 사서에서 ‘훈’이나 ‘투르크’는 자주 서로 바뀌어 사용되었다. 또 동방의 한문사서에 ‘흉노의 후손’으로 나오는 돌궐(突厥)의 시조인 아사나씨(阿史那氏) 가문과 그 속민은 오늘날 사학자들은‘동-돌궐(동투르크)’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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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코리안의 외사촌 격으로서 흉노에서 나온 투르크와 오구즈-위구르

흉노에서 나온 투르크와 오구즈-위구르인들은 사실은 코리안의 외사촌과 고종사촌들로서 형제민족들이다. 왜 그럴까?


우선 돌궐 시조인 아사나씨 가문의 탄생이야기를 보자. 아사나씨의 선조는 지나 서북부 오늘날 위구리스탄의 투르판 지역에서 멀지 않은 감숙성 돈황에 가까운 평량(平凉) 지방에서 태어났다. 이 지방 한 부락의 한 사내아이가 한 마리의 암늑대(牝狼)와 혼인하여 아사나씨 가문의 선조가 되었다. 이 사내 아이의 종족은 <주서> “돌궐전”이 ‘돌궐은 흉노에서 갈라진 씨앗이다.’고 한다. 이 기록으로 보아 그는 분명 흉노인이다.


오늘날 튀르키예인들은 자기네 역사를 ‘흉노단우국(匈奴單于國)’을 비롯하여 거기서 갈라져 나온 이 아사나 가문이 세운 ‘투르크 카간국’에서 서술한다. 그들은 아사나씨 가문이 세운 ‘투르크 카간국’을 투르크 최초의 나라인 ‘괵투르크(하늘의 투르크/푸른 투르크)’라고 부른다.


다른 한편 흉노에서 나온 부계 가문은 아니지만 모계 가문에서 태어난 또 하나의 종족이 있다. 오늘날 보통 투르크인들의 일부로 그들의 형제민족이라고 간주하는 ‘위구르(Uighur)’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이 민족은 투르크인들의 선조와는 대조적으로 ‘흉노공주’와 ‘늙은 숫늑대(老狼)’ 사이의 후손이다.


‘위구르’의 선조들인 '위흘/원흘(韋紇, 袁紇)'은 <북사(北史) > “철륵전”에 따르면 원래 한(漢)나라 시대에 흉노와 함께 그 연맹의 일부를 이룬 ‘딩링(丁零)/틸리’의 일부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딩링’으로 불리다가 그 뒤 ‘고거(高車)’ 연맹으로 불렸는데, 이는 흉노어 소리 말 ‘테렉(鐵勒, 철륵)’을 한문의 뜻으로 옮긴 족칭이다.


‘위구르’는 이 ‘테렉/고거’ 연맹에 딸린 한 부락이었다. ‘(수레 바퀴가) 높은 달구지’를 한문으로 ‘고거(高車)’라고 하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몽골어에서 ‘테렉(鐵勒, 철륵, Terek)’이다. 이 ‘테렉’은 우리말 ‘달구-지’의 ‘다르구(타르구)-’, 곧 ‘달구-’와도 같은 말이다. 역사언어학 분석에 따르면, 코리아-몽골-만주어 낱말 속의 ‘아’ 소리는 투르크어에서는 ‘에’로 바뀌는 특성이 있다. 예컨대 전설적인 투르크인들의 고향인 ‘아르가나 쿤’은 ‘에르게네 쿤’으로 바뀐다. 이 특성을 감안하면, 고대 한민족어‘타르구(다르구=달구)’와 투르크어 ‘테레그/테렉’은 음운적으로 같아 같은 어원에서 온 낱말임을 알 수 있다.


이 부락 연맹 중 한 부락인 ‘위흘/원흘(韋紇, 袁紇)’인들은 후일 세력이 커져 여러 부락으로 이루어진 철륵 연맹의 장이 되었다. 이 부락은 나중에 <신당서(新唐書)>에서 나오듯 수-당대에 와서 ‘위구르(回紇, 回鶻)’로 기록되었다. 당말-오대 시대에 투르크-위구르어로는 ‘위구르카간-국’이라고 불렀다.


이에 앞서 제2동돌궐이 수립된 지 얼마 지난 732년 돌궐의 아사나씨 왕가의 왕자 퀼테긴(아우)과 왕 빌게 카간(형)의 비문들은 그들을 모두 ‘오구즈(Oguz)’라고 부른다. ‘오구즈’인들이 세운 나라가 바로 ‘위구르카간국’이고 따라서 ‘오구즈들(Oguz-lar)’은 ‘위구르들(Uigur-lar)’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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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애초에는 ‘투르크’인들이 아닌, 그들과 구분되는 종족 고구려 재외민 ‘오구즈’

이 ‘오구즈들(Oguz-lar)’, 곧 다른 이름 ‘위구르들(Uigur-lar)’은 애초에 고구려민족의 형제로 오늘날의 용어로는 대략 ‘재외고구려인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민족이다. 빌게 카간과 퀼 테긴 비문들에 따르면 그들의 대략 6대조 전에 ‘뵈클리 카간(Bökli kağan)’의 통치 아래 있으면서 ‘뵈클리(Bökli)’라고 불리던 종족이 있었다.


그리스(동로마 비잔틴제국) 사가 테오필락투스 시모캇테스가 <모리스 황제에게 바치는 사서(606년)>에서 아바르 족이 도망간 극동의 나라 ‘무크리’이자, 또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무구리’라고 부른 민족, 바로 ‘고구려’인들이 그들이다. 후대, 곧 710년대에 이르러 동돌궐카간국에서 바로 그 고구려인들과 관련된 두 종족이 나온다. ‘오구즈’인들과 ‘타타르(Tatar)’인들이다.


그들은 빌게 카간비문 (동면) [12] 및 [13] 줄이 보여주듯이, 처음에는 빌게 카간 자신의 종족인 투르크인들이 분명히 아닌 적대 종족들로 그들과 분명히 구분되는 종족이었다. 당시 투르크인들과 같은 종족이라고 간주된 종족은 빌게 카간 비문이 말하듯이, ‘투르크’인들과 또 <통감> 등 한문사서에 나오는 그 가닥족속 ‘돌기시(突騎施)’, 곧 ‘튀르기시(Türgish)’인들뿐이었다.


그러나 734년 이후 동돌궐의 퀼테긴과 빌게 카간의 시대에 오구즈인들은 투르크인들과 함께 돌궐의 퀼테긴과 빌게 카간의 백성 중 일부로 편입되었다. ‘빌게 카간’은 자신의 묘비명 동면 [18] 및 [19] 줄 등에서 ‘투르크 백성’들에게 하는 말에 이어서, ‘오구즈 백성이여 들어라! ... 타타르 백성들이여 들어라!’ 고 하며 그들 ‘투르크’ 백성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두 다른 백성들에게도 명령하고 있다!

투르크인들이 아닌 이 두 종족은 과연 누구인가?


이들은 놀랍게도 바로 오늘날 말로 부르자면 재외(在外) 부려-고구려인들이다! ‘오구즈(Oguz)’인들은 투르크어로 ‘오구르(Ogur)’인이라고도 기록되었고, <신당서>는 ‘호고르(烏護, 烏紇, 오늘날 소리 ‘오호’, ‘오흘’),수(隋)나라 때에는 ‘위구르(韋紇, 오늘날 소리 ‘위흘’)’라고 적었다. 그런데, 이 말의 옛소리는 ‘코고르(Khogor)’는 ‘커구려(고구려)’와 같은 소리이다. 또 그들이 살아간 지역도 바로 고구려 서북 변방, 곧 오늘날 내몽골 흥안령과 몽골(당시 ‘말갈’) 지역이었다.


이 ‘호고르(烏紇)’는 나중에 ‘코고르(廻鶻, 오늘날 소리 ‘회골’)’이라고도 적었는데, 이 소리의 당시 옛소리도 ‘커고르(고구려)’이고 위구르카간국은 고구려가 망하자, 그들이 옮겨 들어간 괵투르크 제국에서 고구려유민(투르크어로 ‘Tatar’, 곧 ‘대대로’ 백성), 바스밀(투르크의 별종)과 함께 ‘아사나씨 투르크’를 타도하고, 이를 이어 744년 오늘날의 몽골리아 땅에서 카간국을 세웠다. 그 직전 그들은 자신들이 연합했던 ‘바스밀’도 오늘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방면의 서방으로 쫓아버리고 고구려유민과 함께 연합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이다.



8세기 흉노의 외조카(外甥)인 ‘오구즈’에서 나온 ‘위구르 카간’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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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코리안의 선조인 부려(扶餘)인들과 사촌인 투르크와  오구즈

방금 본 고구려를 비롯한 그 세 종족 중 특히 투르크인들과 위구르인들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흥미롭게도 두 민족 다 그 시조 부부 중 한 사람이 흉노-투르크어로 ‘부리(附離: 狼: 늑대)’라고 부르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서로 다른 것은 다만 한 가지 인데, 그것은 앞서 <북사> “돌궐전”과 <북사> “고거전”에서 각각 보았듯이, 그들 시조 부부 중 어느 하나가 암늑대(牝狼)이냐, 숫늑대(老狼)이냐 하는 것뿐이다.


우선 전쟁에서 살아남았으나, 팔다리가 잘린 흉노의 한 사내아이와 그를 발견하고 먹이를 주어 살려내어 키워준 암늑대와 그 아이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이 ‘투르크’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리따운 ‘흉노공주’와 ‘늙은 숫늑대(老狼)’ 사이의 후손이 ‘위구르’의 시조이다. 이 차이뿐이다.


그런데 흉노-투르크어 ‘부리’는 진짜 늑대일까?  말도 안 된다! 늑대와 사람이 어찌 혼인하여 사람을 낳겠는가?


그러면 이 전설적인 그들의 선조 ‘늑대’는 과연 누구일까? 그 답은 고구려와 백제 계 코리안의 선조인 ‘부려(扶餘, ‘부여’의 옛소리)’인이다. 이 말이 흉노-투르크어인 ‘부리(附離)’, 곧 ‘늑대(狼)’와 소리가 같아, ‘부려’를 ‘늑대’로 신화화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려주는 사서의 기록이 있다.

우선 <한서> 흉노전은 돌궐 시대 직전인 그들의 선조 흉노 시대에 “흉노의 상곡(上谷) 지방 동쪽으로는 예맥과 조선이 이어졌다.” 고 한다. 곧 흉노와 예맥, 조선인들은 이웃민족들이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시기에 조선(朝鮮)의 한 방국으로서 조선보다 좀 더 서북 쪽에는 흉노와 이웃한 ‘부려(扶餘)’가 존재했다. 이 땅은 후대에 돌궐과 바로 이웃한 지역이다. 이 사실을 보아서도 ‘부리(附離)’, 곧 ‘늑대(狼)’ 종족은 ‘부려(扶餘)’ 종족임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오늘날 바이칼 동편으로 오늘날에도 “부랴(부여)-티아”라고 불린다.


바로 그 ‘부려(扶餘)’ 사람이라는 말이 흉노-투르크어로 ‘늑대(狼)’와 같은 소리인 말 ‘부리(附離)’와 같은 소리를 가지고 있어 투르크인들은 이를 그처럼 한자로는‘늑대(狼)’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흉노인 사내와 코리안의 선조인 ‘부려’ 여인이 혼인하여 태어난 종족이 투르크인들이고 반대로 흉노 공주와 코리안 부려 사내와 혼인하여 태어난 종족이 위구르라는 이야기이다. 결국 투르크는 코리안의 고종사촌이고, 위구르는 외사촌으로 셋 다 형제 민족들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는 투르크인들이 ‘동이東夷’ 하우夏禹의 후손인 ‘흉노의 남은 씨앗’이라는 사서의 이야기와 같이, 그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친척관계를 알려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강력한 기록상의 증거가 있다. 

‘돌궐’ 시조의 탄생에 관해  앞서 인용한 <주서周書> “이역하(異域下)”에는 ‘돌궐의 선조는 알타이산(金山)의 양지쪽에 살며 조잔(茹茹, 원래 조잔柔然, 곧 朝鮮)의 철공(鐵工)으로 살았다.’고 한 사실이다.


이 말은 돌궐의 선조는 ‘조잔(柔然, 유연의 당시 소리)’의 지배 아래 그 속민으로 철공으로 일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선비(鮮卑)족이 세운 북주 시대에 선비어(鮮卑語)로 ‘주주(茹茹, 여여)’라고 부른 나라의 애초의 국명은 ‘조잔(柔然, 유연의 당시 소리)’이었다. 그런데, 이 ‘조잔’은 원래 ‘조선(朝鮮)’이라는 국명이다. 이 ‘조선’이라는 소리의 나라 이름이 점차 선비어로 ‘조잔’, 그리고 더 나중에는 ‘주주’로 소리가 바뀌었다.


또 하나의 증거는 그 돌궐 시조의 상국이었던 이 나라의 태조가 ‘고구려(욱구려)씨 고구려(무쿠리)’라는 사실이다. ‘커구려(郁久閭, ‘욱구려’의 옛소리) 씨’ ‘무쿠리(木骨閭, ‘목구려’의 옛소리)’의 그 성씨와 이름의 뜻이 바로 ‘고구려(욱구려)씨 고구려(무쿠리)’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도 돌궐의 시조 부부가 흉노의 갈라진 후손 사내아이와 부려(고구려) 계 어머니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입증하며, 이 두 민족은 서로 이웃하며 살면서 통혼하였음을 알려준다.


이처럼 튀르키예 국의 투르크인들의 선조는 코레리(Kore-li, 투르크어로 ‘코리안’)와 역사적으로 사촌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한국동란으로만 맺은 ‘피의 형제’만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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