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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주석 네 차례 지내, 정치 반대파에게도 존경 받아

대선 | 2024.07.26 02:56 | 조회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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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정부 주석 네 차례 지내, 정치 반대파에게도 존경 받아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가 최근 서울 효창공원에 있는 독립운동가 석오 이동녕(1869~1940) 선생의 묘소를 정비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이동녕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네 차례 지낸 인물로,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반드시 거론되는 분이에요. 하지만 해방 전 중국 땅에서 별세했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1933년 무렵 김구(왼쪽)와 이동녕(가운데), 엄항섭이 함께 찍은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조선일보

임정의 충칭 진입을 앞두고 서거

중국 치장(綦江)이란 곳을 아시나요? 지금은 충칭(重慶)시의 한 구(區)로 편입됐지만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지역이에요.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 일제의 추적을 피해 항저우로, 다시 전장으로 근거지를 옮겨야 했어요.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창사, 광저우, 류저우로 계속 옮겨 다니는 ‘대륙 대장정’을 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항전지인 충칭으로 옮기기 직전, 1939년부터 1940년까지 그 근처에 모여 정치적 통합과 군대 결성을 준비하며 전열을 재정비한 곳이 바로 치장이었습니다. 이 ‘치장 임시정부’에서 비극적인 일 하나가 일어났습니다. 석오 이동녕이 병으로 별세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치장이란 곳에서 임시정부의 흔적을 찾기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2015년 8월 필자가 직접 치장에 가서 임정 청사를 찾다가 길을 잃고 헤맨 적도 있습니다. 주소를 대조해 간신히 찾아가 보니, 임정 청사가 있었다는 곳에는 주상 복합 건물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 아래쪽 초라한 시멘트 건물 한쪽 벽에서 마침내 표지판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韓國臨時政府(한국임시정부) 主席(주석) 李東寧(이동녕) 旧居遺址(구거유지)’라고 쓰여 있었죠. 이동녕 주석이 예전에 거주하던 곳이라는 기록이에요. 중국 측이 2000년 표지판을 설치했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돼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멈추지 않았던 구국과 독립 투쟁

고종 6년 충남 천안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이동녕은 전통 서당 교육을 받았고 과거 시험에도 합격했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던 개화 사상을 접하고 27세 때인 1896년 독립협회에 가담했습니다. 외세의 침략 앞에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구하려 정치 활동을 했던 것입니다. 1897년 독립협회 주최로 서울 종로 네거리에서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자는 만민공동회가 열리자 적극 참여했고, 이로 인해 이준·이승만 등과 함께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이동녕 주석 거주지 한쪽 벽에 붙어 있던 표지판. 2015년 8월에 촬영한 것으로, 관리가 되지 않아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돼 있어요. 현재는 새 표지판이 달려 있죠. /유석재 기자© 제공: 조선일보

이후 제국신문의 논설위원으로서 민족 의식 고취에 힘썼고, 1903년엔 이상재·전덕기 등과 함께 YMCA(기독교청년회)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다 일본 헌병에 체포돼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후 만주 북간도 용정촌에 교육 기관인 서전의숙을 설립해 국외 독립운동 기지의 뿌리를 놓았고, 안창호·양기탁 등과 함께 항일 비밀 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하는 등 항일 운동을 멈추지 않았죠.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하자 이동녕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났습니다. 평생 고생길이자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할 길이었습니다. 그는 만주에서 훗날 독립군 양성의 중추 기관인 신흥무관학교가 되는 신흥학교를 설립했고, 러시아 연해주를 넘나들며 독립군 기지 설립과 독립선언서 작성 같은 일에 힘썼습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국외 독립운동 세력은 임시정부 설립에 나섰습니다. 이때 임시의정원 의장이 된 이동녕은 그해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20여 년 동안 그는 임정(임시정부)의 내무총장, 국무총리, 주석 등을 지내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는데, 그 자신이 권력을 잡기보다는 여러 파벌로 나뉘고 정치적 격동을 겪었던 임정에서 중심을 잡고 다른 동지들을 도우며 대동단결을 위해 노력하는 ‘큰어른’ 역할을 맡았습니다.

2008년에 열린 석오 이동녕 선생 68주기 추도식. /조선일보 DB© 제공: 조선일보

1926년 임정 최고위직인 국무령 자리가 비자 이동녕은 김구에게 그 자리를 맡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김구가 “제 출신 배경이 미천해 임정의 위신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사양하자 “오랫동안 임정 활동에 기여해 온 백범(김구의 호)이 맡지 않는다면 임정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오”라고 설득했습니다. 그 결과 그해 12월 김구가 국무령에 취임한 뒤 임정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광복하려면 반드시 뭉쳐야”

‘임정의 안주인’으로 불렸던 독립운동가 정정화는 이동녕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깔끔한 용모답게 공적인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간에 너저분한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무슨 일을 처리하든지 공정했다. 주의나 주장이 확고하면서도 언제나 말수가 적고 청렴했기에 그와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이들도 선생을 존경하고 흠모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제도 임정 요인 중 바로 그를 공략하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사람을 보내 ‘일본에 귀화하라’고 권했는데, 이동녕은 이를 듣자마자 그 사람의 뺨을 때리고 내쫓아 버렸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고단했던 임시정부의 대륙 대장정도 거의 끝나가던 1939년, 70세의 이동녕은 네 번째로 임정 주석을 맡았습니다. 시안에 대한군사특파단을 파견해 무장 훈련을 받게 했고, ‘국내외 동포들이 독립운동의 새 국면에 적극 협조해 달라’는 포고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역에서 건강을 돌보지 않고 끊임없는 독립 투쟁을 벌이던 이동녕은 급성 폐렴에 걸렸고, 1940년 3월 13일 임정의 일곱 번째 근거지였던 치장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당시 임정은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한국국민당 등 여러 당파로 나뉜 상태였는데, 이동녕은 “광복을 하려면 반드시 한데 뭉쳐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의 유해는 1948년 조국으로 돌아왔고,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죽은 이에게 훈장 등을 줌)됐습니다.

                                                                      <참고문헌>

  1.유재석, "임시정부 주석 네 차례 지내… 정치 반대파에게도 존경 받아", 조선일보, 2024.7.25일자. A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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