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위로
HOME > 게시판 > 회원게시판

화가 황주리의 현대사 보물

대선 | 2024.07.30 16:37 | 조회 4125
  • 폰트
  • 확대
  • 축소

                                화가 황주리의 현대사 보물

황주리 작가가 서울 용산 작업실에서 보물 세 가지를 소개했다. 1957년 6월호 '신태양' 잡지, 원고지 그림을 이어 붙인 대형 작품 '추억제', 어머니가 선물한 안경에 그가 그림을 그린 '안경에 관한 명상'이다. /박상훈 기자
0
황주리 작가가 1980년대 청춘의 기록인 ‘원고지 그림’ 뒤에 서 있다. 하루 한 장씩 일기를 쓰듯 원고지에 그린 그림을 이어붙인 대형 작품 ‘추억제’(1985)다. /박상훈 기자
황주리 작가가 1980년대 청춘의 기록인 ‘원고지 그림’ 뒤에 서 있다. 하루 한 장씩 일기를 쓰듯 원고지에 그린 그림을 이어붙인 대형 작품 ‘추억제’(1985)다. /박상훈 기자

서양화가 황주리(67)는 어릴 적부터 책과 원고지에 파묻혀 자랐다. 출판사를 운영하던 아버지 덕분이다. “태어나서 제일 먼저 본 종이가 원고지였고, 집에는 원고지가 휴지보다 더 많이 쌓여 있었다”고 했다. 그의 부친은 1950~70년대 대표적 출판사였던 신태양사 황준성 대표. ‘신태양’ ‘여상’ ‘명랑’ 같은 잡지를 비롯해 ‘대한국사’ ‘조선총독부’ ‘흑막’ 등을 펴내며 이름 날린 출판사다.

김환기가 표지 그린 1957년 6월호 잡지

‘신태양’은 1952년 창간해 1959년 폐간까지 당대 대표 종합 잡지로 인기를 끌었다. 굵직한 문인들의 소설과 수필은 물론 날카로운 정치·경제 논문을 실었다. 황주리는 “지금도 창간호만 빼고 신태양 잡지는 다 갖고 있다”며 “수화 김환기 선생이 표지 그림을 그린 1957년 6월호를 특히 아낀다”고 했다.

“제가 1957년생이고, 김환기 선생의 작가 정신이 제 예술 인생의 멘토이기 때문에 더없이 소중하죠. 어릴 땐 이 그림 원화가 집에 있었는데 언젠가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선물해서 지금은 없어요.” 서울 용산 작업실에서 만난 그가 빛 바랜 잡지를 꺼내 보여줬다. 한자로 큼직하게 적힌 ‘新太陽(신태양)’ 제호 아래,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김환기의 그림이 표지를 덮고 있었다. 그는 “당시만 해도 김환기, 천경자 등 한국 대표 화가들이 잡지 표지를 많이 그렸다. 그림 값이 이렇게 비싸질 줄은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수화 김환기가 표지 그림을 그린 1957년 6월호 ‘신태양’. /박상훈 기자
수화 김환기가 표지 그림을 그린 1957년 6월호 ‘신태양’. /박상훈 기자

원고지는 내 첫 캔버스

방에 늘 쌓여 있던 원고지는 화가의 첫 캔버스가 됐다. “비행기도 접고 낙서도 하고 놀다가, 자연스럽게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어릴 땐 너무 말이 없어서 유치원 졸업 날 ‘너 벙어리지?’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는데, 어머니가 걱정하다가 미술 학원에 저를 끌고 갔어요. 그때부터 매일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이 제겐 세상을 향해 손을 내미는 시작이 된 것 같아요.”

‘원고지 그림’은 작품으로 탄생했다. 1982년 작 ‘추억제’는 하루 한 장씩 일기를 쓰듯 원고지에 그린 그림을 이어 붙인 대형 작품이다. “너와 나의 초상들이 얼핏 보면 화려한 축제처럼 술렁이는 혼돈과 무질서 상태로” 원고지 위에 그려져 있다. 경쾌하고 화사한 지금의 황주리 스타일과 달리, 다소 어두운 색감으로 뒤덮인 것도 눈길을 끈다. 그는 “1980년대 잃어버린 시간, 성난 군중과 억압, 사회적 불안과 그 시절에 느꼈던 어쩔 수 없는 개인적 고독, 자유에 대한 상상이 뭉뚱그려진 작품”이라며 “가장 어두운 자기 연민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어머니가 선물한 안경 위에 그가 그림을 그린 작품 ‘안경에 관한 명상’(1991). /박상훈 기자
어머니가 선물한 안경 위에 그가 그림을 그린 작품 ‘안경에 관한 명상’(1991). /박상훈 기자

안경에 담긴 추억

황주리는 소장한 물건에 그림을 그리는 오브제 작업으로도 유명하다. 1976년 대학 입학 기념으로 어머니가 선물한 안경에 그가 그린 1991년 작 ‘안경에 관한 명상’은 특히 아끼는 작품이다. “독일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갔더니 유태인들의 안경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이거야말로 20세기 최고의 비극적 설치 작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집에 모아두었던 안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잠이 안 올 때 다락을 뒤지면 뭔가를 찾게 되고, 그것이 다음 날 작품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집에서 쓰던 접시 하나도 내겐 다 그림”이라며 “잃어버린 시간이 내 안의 보물섬”이라고 했다.

황주리 작가가 원고지에 그린 그림을 이어붙인 대형 작품 ‘추억제’(1985) 뒤에 서 있다. 작가 뒤에 걸려 있는 그림은 그의 또 다른 작품이다. /박상훈 기자
황주리 작가가 원고지에 그린 그림을 이어붙인 대형 작품 ‘추억제’(1985) 뒤에 서 있다. 작가 뒤에 걸려 있는 그림은 그의 또 다른 작품이다. /박상훈 기자

소설 쓰기는 그리움과 함께 사는 법

문화계에서 그는 ‘글 잘 쓰는 화가’로 통한다. 1993~96년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에 ‘살아있는 모든 날들은 아름답다’라는 그림 에세이를 연재했고, 수필집을 여섯 권 냈다. “대학원 시절 연재하던 분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40장 분량 제 글이 처음 실렸어요. 당시 문학사상 주간이던 이어령 선생이 전화를 하셨죠. ‘자네, 글을 진짜 잘 쓰니까 그림을 빨리 그만두고 글을 써라’라고요. 그때 그림 있는 에세이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 제 스타일이 된 것 같아요.”

최근엔 네 번째 소설 ‘마이 러브 프루스트’를 펴냈다. “프루스트가 주인공이 아니라,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라며 “프루스트라는 이름은 시간에 대한 상징”이라고 했다. 왜 소설을 쓰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겪어보지 않은 삶을 상상하는 게 행복해서”라고 답했다. “내게 그림은 밥을 먹는 일이고, 소설 쓰기는 그리움과 함께 사는 법이다.”

어머니가 선물한 안경 위에 그가 그림을 그린 작품 ‘안경에 관한 명상’(1991). /박상훈 기자
어머니가 선물한 안경 위에 그가 그림을 그린 작품 ‘안경에 관한 명상’(1991). /박상훈 기자

안경에 담긴 추억

황주리는 소장한 물건에 그림을 그리는 오브제 작업으로도 유명하다. 1976년 대학 입학 기념으로 어머니가 선물한 안경에 그가 그린 1991년 작 ‘안경에 관한 명상’은 특히 아끼는 작품이다. “독일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갔더니 유태인들의 안경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이거야말로 20세기 최고의 비극적 설치 작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집에 모아두었던 안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잠이 안 올 때 다락을 뒤지면 뭔가를 찾게 되고, 그것이 다음 날 작품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집에서 쓰던 접시 하나도 내겐 다 그림”이라며 “잃어버린 시간이 내 안의 보물섬”이라고 했다.

황주리 작가가 원고지에 그린 그림을 이어붙인 대형 작품 ‘추억제’(1985) 뒤에 서 있다. 작가 뒤에 걸려 있는 그림은 그의 또 다른 작품이다. /박상훈 기자
황주리 작가가 원고지에 그린 그림을 이어붙인 대형 작품 ‘추억제’(1985) 뒤에 서 있다. 작가 뒤에 걸려 있는 그림은 그의 또 다른 작품이다. /박상훈 기자

소설 쓰기는 그리움과 함께 사는 법

문화계에서 그는 ‘글 잘 쓰는 화가’로 통한다. 1993~96년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에 ‘살아있는 모든 날들은 아름답다’라는 그림 에세이를 연재했고, 수필집을 여섯 권 냈다. “대학원 시절 연재하던 분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40장 분량 제 글이 처음 실렸어요. 당시 문학사상 주간이던 이어령 선생이 전화를 하셨죠. ‘자네, 글을 진짜 잘 쓰니까 그림을 빨리 그만두고 글을 써라’라고요. 그때 그림 있는 에세이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 제 스타일이 된 것 같아요.”

최근엔 네 번째 소설 ‘마이 러브 프루스트’를 펴냈다. “프루스트가 주인공이 아니라,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라며 “프루스트라는 이름은 시간에 대한 상징”이라고 했다. 왜 소설을 쓰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겪어보지 않은 삶을 상상하는 게 행복해서”라고 답했다. “내게 그림은 밥을 먹는 일이고, 소설 쓰기는 그리움과 함께 사는 법이다.”

                                          <참고문헌>

  1. 허윤희, "1957년 김환기가 표지 그린 '신태양'… 출판 집안서 자라 글 쓰는 화가 됐네요 : [나의 현대사 보물] [59] 화가 황주리", 조선일보, 2024.7.30일자. A18면. 




twitter facebook kakaotalk kakaostory 네이버 밴드 구글+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카카오스토리로 퍼가기

공유(greatcorea)
도움말
사이트를 드러내지 않고, 컨텐츠만 SNS에 붙여넣을수 있습니다.
게시판 1,582개(1/99페이지)
공지 [회원게시판 이용수칙]
관리자 | 2023.10.05 | 조회 510230
공지 상생의 새문화를 여는 STB 상생방송을 소개합니다.
환단스토리 | 2018.07.12 | 조회 676299
우리의 역사 27부. 집현전 숫자와 사육신 숫자 new
구영탄 | 2025.07.01 | 조회 117
우리의 역사 48부. 흥선대원군의 일본 이름 new
구영탄 | 2025.07.01 | 조회 111
우리의 역사 26부. 통일 신라 셀주크 투르크, 그리고 탕쿠트 부족.
구영탄 | 2025.06.29 | 조회 160
우리의 역사 25부. 청나라
구영탄 | 2025.06.29 | 조회 151
우리의 역사 24부. 요나라
구영탄 | 2025.06.29 | 조회 157
우리의 역사 23부. 위촉오 나라 , 프톨레 마이오스(5호 16국)
구영탄 | 2025.06.29 | 조회 141
우리의 역사 22부. 송수당명나라 원 금나라왕조 동로마 왕 같음.
구영탄 | 2025.06.29 | 조회 128
우리의 역사 21부. 서 동로마 왕들과 프톨레 마이오스 왕 숫자가 같음.(고구려백제신라가야)
구영탄 | 2025.06.29 | 조회 150
우리의 역사 20부. 상하은주와 파피루스 고대 로마그리스 신화
구영탄 | 2025.06.29 | 조회 140
우리의 역사 19부. 프톨레마이오스 왕, 5호 16국과 수당나라 왕의 숫자
구영탄 | 2025.06.29 | 조회 135
우리의 역사 47부.. 욕
구영탄 | 2025.06.29 | 조회 137
우리의 영사 46부. 세종
구영탄 | 2025.06.29 | 조회 134
우리의 역사 18부. 프톨레 마이오스 왕조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
구영탄 | 2025.06.29 | 조회 143
우리의 역사 45부. 트럼프
구영탄 | 2025.06.29 | 조회 147
우리의 역사 44부. 도리스 부족
구영탄 | 2025.06.29 | 조회 127
우리의 역사 17부. 전국시대 7웅왕의 숫자.
구영탄 | 2025.06.29 | 조회 154
처음페이지이전 5 페이지12345다음 5 페이지마지막페이지
삼랑대학
STB동방신선학교
세종문고 쇼핑몰
증산도 공식홈 안드로이드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