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병풍 삼은 서산무형유산의 향연
우리가 알 듯, 내포(內浦)라는 용어는 포구가 내륙 안으로 들어와 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는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의 '택리지'(擇里志) 기록에 근거한다. 내포는 충청도 가야산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그 주변 지역을 말한다. 예산, 홍성, 서산, 태안, 당진, 보령 등 충남 서북부지역이 이에 해당된다. 서산은 명실공히 내포문화권 중심으로 손색이 없다. 이는 '택리지'의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10개 고을을 함께 내포라 한다.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며 생선과 소금이 매우 흔하므로 부자가 많고 여러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 집이 많다. 호수와 산의 경치가 아름답고 활짝 틔어서 명승지라 부른다. 북쪽으로 결성, 해미가 있고 서쪽으로 큰 포구 하나를 건너 안면도가 있다. 세 고을이 가야산 서쪽에 위치했으며 또 북편에는 태안, 서산이 있다"(이중환의 '택리지' 중)
여기서 보듯 서산은 지정학적, 인문지리적 개념에서 우월성을 점유하고 있다. 가야산 주위를 감싸고 있는 너른 평야의 지리적 환경에 따른 고유한 내포문화권 형성도 특장점에 속한다. 서산의 존재론적 근원은 마한 56개 속국 중 하나인 치리국으로 소급된다. 신라 755년(경덕왕 14년)에 부성군(富城郡)으로 편제됐다. 서산의 옛 이름 부성은 옛날 당나라로 가는 대표적 항구로 통했다. 한편 대륙으로부터 선진문화가 유입되는 중요한 길이기도 했다. 당나라 유학파 출신 최치원(857-?) 또한 내포의 뱃길을 따라 중국을 오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흔히 신라오기(新羅五伎)라 불리는 '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에 등장하는 다섯 가지 기예(금환·월전·대면·속독·산예)는 한국 전통연희의 원류로 통한다. 신라오기는 최치원이 당나라 유학시절 접한 서역계통의 연희물에 대한 기록의 산물로 추정된다. 부성 태수를 지낸 최치원이 남긴 전통연희의 숨결은 서산의 오랜 역사 속에 살아 숨쉰다.
조선후기의 유학자 이철환(1722-1779)이 남긴 '상산삼매'(象山三昧)의 기록도 주목된다. '상산삼매'는 이철환이 1753년 10월부터 1754년 1월까지 약 4개월간 가야산을 유람하며 사찰에서 연행된 공연문화를 기록한 기념비적 저작이라 할 수 있다. 100여 개의 사찰이 있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가야산은 불교문화의 성지로 통한다. 18세기 가야산 일락사와 정수암에서 승려들이 연행한 각종 공연물이 존재했음은 실로 흥미롭다.
기록에 등장하는 17세의 사미승 회잠(會岑)과 여옥(呂玉)은 단연 돋보인다. 거문고, 퉁소, 풀피리 등 교묘(巧妙)한 연주와 꼭두각시놀음 등 단아한 몸짓이 눈에 잡힐 듯하다. 특히 서산쪽으로 펼쳐진 가야산 중턱에 자리한 일락사는 중고제 명인들의 득음을 위한 수련장으로 이름이 있었다. 해미 출신 소리꾼 방만춘은 11세 때 일락사로 들어가 10여 년간 소리공부 끝에 중앙무대로 진출하여 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이렇듯 불교 민속문화와 중고제 소리문화를 품은 가야산은 유서 깊은 명산으로 손꼽힌다.
지난달 29일 해미읍성에서 가야산을 병품 삼아 서산지역 무형유산이 한 자리에서 선보이는 공연무대가 개최됐다. 서산 소재 내포앉은굿, 내포제시조, 박첨지놀이, 승무, 대목장 등 다섯 종목의 충남무형유산이 합동공연 형식으로 꾸며져 관심을 모았다. 특히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한 '마당놀이 박첨지댁 경사'라는 공연양식도 이채롭다. 특히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한 '마당놀이 박첨지댁 경사'라는 공연양식도 이채롭다.
무엇보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대목장의 집짓기 시연은 압권이었다. 나무를 재료로 일체 못을 사용하지 않고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뚝딱 집을 완성하는 고건축 방식은 한마디로 묘술에 가까웠다. 해미읍성이라는 유서 깊은 유형자산을 배경으로 시간의 경계를 훌쩍 넘어 펼쳐진 지역 고유의 무형유산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 깊은 기회였다.
<참고문헌>
1. 성기숙, "가야산 병풍 삼은 서산무형유산의 향연", 대전일보, 2024.10.29일자.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