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950~1960년대 지성계를 대표한 잡지 '사상계'가 폐간 55년 만인 내년 2월 재창간한다. 독립운동가이자 민주화운동가로 의문사한 장준하(1918~1975) 선생이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만들었던 잡지다. 당시 "사상계를 끼고 다니지 않으면 대학생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지식인 잡지' 대접을 받았으나 김지하의 권력 풍자시 '오적'을 실었다는 이유로 1970년 5월호를 마지막으로 박정희 정권이 폐간시켰다.간을 주도하는 장호권(75) 장준하기념사업회 회장은 25일 한국일보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장준하 선생의 맏아들이다. 장 회장은 "어지러운 세상이 장준하 선생을 다시 소환했다"면서 "내 몸을 빌려드리겠다는 생각으로 복간에 나섰다"고 했다.
왜 지금 장준하와 사상계인가
장 회장은 1975년 선친의 의문사 이후 생명의 위협을 받고 해외를 떠돌다 2004년 영구귀국해 사상계 복간을 추진했다. 2007년 복간준비호도 냈지만 "현실을 몰라 실패"했다. 원고료 지급도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이후 장준하 선생의 암살 의혹 규명에 매달리면서 사상계 복간은 미뤄뒀다.
사상계 복간 논의가 다시 시작된 건 지난해 말부터다. 장 회장은 "사상계는 한국 근대사 격동의 순간에 민족문화를 표방하고 등장해 자기 소임을 다했다"며 "다시 나라가 위기에 처한 지금 이 시대가 다시 사상계와 장준하 선생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2025년판 사상계의 명예발행인에는 '장준하'란 이름 석 자가 올라 있다. '따뜻한 진보와 아우를 줄 아는 보수'라는, 장준하 선생이 지향했던 신념도 계속 이어진다. 장 회장은 "집을 지키는 진정한 보수와 집이 더 잘 살도록 뛰어다니는 진보가 한 집안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은 완전히 따로 논다"며 "사상계는 양 날개를 잘 지탱해주는 몸통 역할을 지향할 것"이라고 했다.
미래세대 위한 '문명전환종합지' 표방
사상계는 과거 판형과 제호 그대로 돌아온다. '문명전환종합지'를 표방한다. 각 분야 전문가들로 편집위원단 48명이 꾸려졌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와 윤순진 서울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이정옥 전 여성부 장관,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나다 순) 등이 참여한다. 20대부터 70대까지 세대뿐 아니라 남녀 성비도 안배했다. 과거 사상계 편집위원 중에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내년 2월 나올 재창간 1호인 봄호(통권 207호)는 '응답하라 2025'를 주제로 한 특집기획호다. 해방 80주년, 한일 수교 60주년인 2025년에 대한 진단과 과제를 담는다는 게 편집인을 맡은 장원 농촌유토피아연구소 대표의 설명이다. 장 대표는 "복간 사상계는 생태적 교양종합지로 미래세대의 등불이 되는 잡지를 지향한다"며 "아날로그와 디지털, 여성과 남성, 자연과 인간, 매거진과 웹진이 함께 융성하는 세상을 위해 기꺼이 종이잡지로서의 역할을 감내할 것"이라고 했다.
사상계는 내년 한 해 계간으로 선보인 후 2026년부터 격월간으로 발행될 예정이다. 복간 사상계가 궤도에 오른 후에는 장준하기념관 건립도 추진한다. 장 회장은 "반민족 세력인 이승만·박정희 기념관에 맞서는 정통 민족주의자인 장준하 선생의 기념관을 범국민 모금운동을 통해 현재 묘역이 있는 경기 파주의 장준하 공원에 지을 계획"이라고 했다. 궁극적으로는 장준하기념사업회에서도 손을 떼고 사회에 내놓는 게 그의 목표다. 가족이 기념사업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나에게도 '장준하 아들'이 아닌 내 이름으로 살 날이 오겠죠."
사상계 재창간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가 오는 29일 서울 종로구 서울의대 동창회관인 함춘회관에서 열린다.
<참고문헌>
1. 권영은, "아버지 장준하 선생이 내 몸 빌려서.. 55년 만에 재창간되는 지식인들의 잡지 '사상계', 한국일보, 2024.11.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