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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기] 어버이날에 생각하는 나의 아버지(거제저널)

대선 | 2025.05.08 23:34 | 조회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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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8일, 올해도 어김없이 어버이날이 다가왔다. 어버이날을 맞는 풍경은 정겹고 훈훈하고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은혜를 기리는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다.

지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마는, 우리의 어버이들처럼 유별난 희생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삶의 전부를 자식에게 걸다시피 하며 모진 고난을 감내하는 게 이 땅의 헌신적인 ‘어버이상’이다.

극성스러울 만큼 집착하는 교육열 하나만 봐도 ‘내리사랑’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또 경로효친의 실천은 오랜 세월 가정의 질서를 주도하고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시켜준 토대다. 그러나 시대 변천에 따라 이런 훌륭한 전통도 날로 퇴색해감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소크라테스(BC 479-BC 399)는 ‘네 자식이 해주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이 네 부모에게 행동하라’고 했다. 성경 에페소서(6, 1-4)에도 ‘자녀들아 네 부모에게 순종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어버이날을 맞아 자식세대는 부모님들이 살아낸 그 거칠고 힘들었을 세월을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필자는 오늘 어버이날을 맞아 특히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아버지(父)는 혈통을 직접 이어주는 남자이며, 한 가족의 중심되는 인물이다.

부계사회에서 아버지는 가정에서의 권위, 그리고 사회적 존재의 원천으로 생물학적 맥락과는 관계없이 사회학적 개념으로 인식되어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할아버지의 나라(祖國, Grandfather's Country)라고 부르는 것처럼 존재의 근본이다.

이처럼 아버지는 하늘과 같은 존재요, 법과 질서가 가지는 체계적인 힘, 그리고 육체와 정신에 있어서의 우월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복종은 기존의 질서에 대한 순 복종을 의미하며, 반대로 아버지에 대한 도전과 반항은 곧 우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와도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5월이 가정의 달이어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부재자인 것처럼 그 자리는 비워져 있다. 보수전통의 상징인 아버지의 권위가 허물어져 버린 것 같다. 아버지가 중심이요, 본보기이던 시대가 마감되는듯한 허전함이 스며들고 있다.

공자(孔子, Confucius: BC 551-479)는 “그 아들을 알지 못할 때는 그 초목을 보라”라고 했다.

BC 600년경(공자가 태어나기 7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관자(管子, Kuan-tz)에 의하면 “자식을 아는데 그 아버지를 따를 사람이 없다”라고 했는데 그 아버지가 안 보이니 그 아들이, 그 초목이 어찌 온전하다고 하겠는가.

작가 게오르규(Gheorghiu Constantin, 1916-1992)는 “자신의 기억에 평생토록 깊이 새겨진 최초의 인간의 모습은 요람 옆에 서 계신 아버지였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를 바라볼 때마다 그 인품에 존경심(awe)과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동서고금의 많은 신화에서 아버지가 없는 상태에서 성장한 아이들의 설움과 고통을 이야기하며,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장면이 등장한다.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방탕한 아들의 처참한 심경과 아들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맞아주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사랑·용서·자비·관용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루카복음 15:11-32).

이것은 빛과 어둠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 1606-1669년)이 그린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라는 그림에서도 잘 묘사돼 있다.

여러해 전, 러시아의 샹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할 때 그 곳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이 그림을 보고 한참 생각에 잠긴 적이 있었다.

필자에게도 아버지는 너무나 아련하고 각별한 존재로 각인돼 있다. 아버지는 글을 쓰고 읽을 줄도 모르고 찢어지게 가난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인정이 많고 부지런하며 인자하고 근검 절약하셨고 또 자식사랑 만큼은 지극하셨다.

아버지는 평생 노름을 하지 않으셨고 큰 소리를 치지 않으셨고 술을 입에 대지도 않으셨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초목근피(草木根皮)로 생활하셨고 평생 허리 굽혀 일만 하신 기억들만 남아 있어서 더 마음 아프기 짝이 없다.

내가 성인이 되고 아이를 낳고 나름 자릴 잡고 살 무렵, 아버지께서는 기다려주시지 않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때 나는 하늘이 무너진 같은 천붕(天崩), 하늘덮개가 열린 듯한 충격을 한동안 받았다. 아버지의 존재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나에겐 위안이고 안식이며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필가 ‘안숙(安淑)’은 “하늘에 외로운 섬 낮달이 떠 흘러간다. 아버지, 당신의 하늘에도 낮달이 피나요?”라고 ‘아버지의 섬 낮달’이란 수필에서 노래했다.

‘아버지‘하면 생각나는 것이 낮 시간 쉬지 않고 일만 하시던 모습이다. 빛을 잃고 하늘을 배회하는 외로운 섬 낮달처럼 한(恨)이 많은 삶을 사셨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매년 5월이 오면 유달리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저미어오고 마냥 그리워진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기억이 아득하다.

아버지! 정녕 당신의 하늘나라에도 낮달이 떠는지요? 한낮에 낮달이 뜰리야 없으랴만, 그래도 낮에는 아들이 그리워지기만 한다면 낮달에 얼굴을 살포시 비춰주시지 않을까 하고 오늘도 종일 아버지 바라기를 한다.

5월은 우리의 아버지를 찾아 나서고 그 자리를 복원하는 달이었으면 좋겠다.

이한기 마산대 명예교수2025.05.08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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