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처음 에베레스트 정상에… 31세에 '영원한 산사람'으로 고상돈
고 고상돈 산악인이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올라 태극기를 높이 치켜들고 있다.
‘한국, 에베레스트 정복’ ‘1977년 9월 15일(현지 시간) 낮 12시 50분 8천8백48m 정상에 태극기를 꽂다’ ‘고상돈 조 세계 14번째 쾌거’ ‘최단 시일 등정 기록’ ‘1시간 체류-5캠프 출발 8시간 50분 만에’(1977년 9월 17일 자 1면)
1977년 9월 17일 자 조선일보 1면은 제목만 읽어도 환희와 흥분이 느껴진다. 1977년은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하는 해다. 경제 개발이 성공을 거두며 국민적 자신감에 한껏 들뜨던 시기였다.
29세 산악인 고상돈(1948~1979)은 15일 낮 12시 50분(현지 시각)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베이스캠프에 무전을 통해 “여기는 정상, 더 올라갈 데가 없다”고 말했다.
“에베레스트 등반대에 관한 모든 정보를 관장하고 있는 네팔 외무성은 한국 등반대의 고상돈 대원과 세르퍼 펨바 노르부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뒤 정상에서 태극기와 네팔기를 흔들면서 약 1시간을 보낸 후 현재 베이스캠프로 아무 사고 없이 내려오는 중에 있다고 말했다. 외무성의 공식보고는 고상돈 대원과 세르퍼 노르부는15일 새벽4시 8천5백m지점에서 정상 공격에 나섰으며 9시 30분에는 남봉에 도달, 이곳에서 3시간에 걸친 험난한 등반 끝에 마침내 대망의 에베레스트 정복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
이로써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55명이 되었으며, 그중 2명은 여자이다. 한국 등반대가 택한 사우드 콜 루트는 영국 팀의 에드문드 힐라리 경(卿)에 의해 1953년 5월 최초로 개척되었다. 한국 등반대의 박상렬 대원은 9일 정상 공격을 시도했었으나 악천우와 산소 부족으로 정상 밑 1백m지점에서 실패했었다.”(1977년 9월 17일 자 1면)
거대한 자연 앞에서 ‘공격’이니 ‘정복’이니 하는 표현은 오만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은 용기 있는 도전과 성공을 향한 노력이 온 국민에게 감동을 주던 시기였다. 이은상 한국산악회장은 “이번 에베레스트 등정이 한국 등산사에 신기원을 이룩한 것은 물론이려니와 특히 1차 공격에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2차 공격을 감행, 마침내 뜻을 이룬 한국대의 그 용기와 집념과 사명감 완수에 만세를 보낸다”고 했다. 산악인 손경석은 “한국대의 영광은 한국인의 강인한 민족성과 최근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대장과 전 대원이 한덩어리가 되어 가혹한 자연의 시련을 극복한 것”이라고 감격해 했다.
고상돈을 포함한 18명 에베레스트 원정대는 10월 6일 낮 12시 45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등반대장 김영도는 기자회견에서 “에베레스트 정복은 우리 대원 18명과 2백만 산악인, 그리고 4천만 국민 모두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고상돈은 “정상을 밟는 순간 혹시 다른 봉우리가 아닌가 하고 주위를 둘러봤으나 육감이 이상해 주변을 서성이다가 중공(中共) 산악대의 깃봉을 발견, 정상임을 확인했으며 정상의 넓이는 반 평 남짓했다”(1977년 10월 7일 자 1면)고 말했다.
원정대원은 지프 8대에 나눠 타고 국립묘지를 참배한 후 제2한강교~신촌~서소문~시청 앞~대한산악연맹까지 1시간 동안 많은 시민의 환호 속에서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고상돈은 제주 출신으로 충북 청주에서 청주대학교를 졸업했다.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 성공 후 수기 ‘에베레스트 사나이’를 조선일보에 3회 연재했다.
“12시 50분, 나는 비로소 벅찬 감정을 억누르며 “여기는 정상이다. 여기는 정상이다”라고 외치면서 본부를 불렀다. 그러나 이것도 실수였다. 원래는 “여기는 공격조 여기는 공격조. 본부 나오라”-이렇게 교신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 정상에 섰다. 약속대로 마침내 해낸 것이다. 발아래 눈을 쓰고 엎드린 히말라야 영봉들이 아득하게 내려다보였다. 태극기를 꽂고, 성경책과 훈련 중 희생된 세 동지의 사진을 묻고, 중공의 삼각대를 밟으며 보낸 1시간가량의 정상에서의 시간은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1977년 10월 12일 자 3면)
고상돈은 1년 8개월 후인 1979년 5월 29일 북미 알래스카 최고봉인 매킨리봉 정상 도전에 성공한 후 하산하다가 경사 65도, 900m 빙벽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결혼하고 1년 남짓 지난 신혼 때였다.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남편 사망 7개월 후 딸을 낳았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고 고상돈씨의 유복녀가 작년 12월 28일 출생했음이 8일 밝혀졌다. (…) 구랍 28일 오전 10시 30분쯤 대전 산부인과에서 순산, 모녀가 모두 건강하다는 것. (…) 고씨의 유복녀가 출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친지들은 “산사나이가 일점 혈육을 남겼으니 다행”이라며 기뻐했다.”(1980년 1월 9일 자 7면)
26주기인 2005년 5월 29일 제주도 한라산 1100고지 묘소 앞에서 고상돈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등정했다가 ‘산(山)사람’이 된 후배 산악인 박무택의 시신을 산악인 엄홍길이 1년 만에 수습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이한수, “한국인 처음 에베레스트 정상에… 31세에 '영원한 산사람'으로 고상돈”, 조선일보, 2026.5.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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