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100년, 가이아의 역습
“님은 갔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전 국민이 다 아는 시 ‘님의 침묵’의 시작이다. 그런데 님은 왜 떠났을까. 그 님은 어제 잘해주다가도 오늘 잠수를 타는 변덕스럽기만 한 님이 아닐 텐데. 굳고 빛나던 사랑의 맹세가 어떻게 한숨의 미풍에 날아갈 수 있을까. 한순간에 날아갔던 것처럼 또 한순간에 돌아올 수는 있는 걸까.
100년 전 한용운, 떠나는 님의 노래 기후위기, 지구란 님 떠나는 것일까 가이아의 마음으로 지구 살펴야 지본주의보다 지구 종말 상상 쉽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으로 운명의 지침까지 돌려놓은 님을 보내고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울고 싶은데 울어도 되는 걸까. 이별이 눈물의 원천이 되면 스스로 사랑을 깨는 것이라는데. 어떻게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희망을 만들 수 있을까.
님이 떠난 자리, 슬픔과 아픔이 차올라 지독한 몸살을 앓게 되면 몸은 살기 위해서도 변화를 모색한다. 슬픔을 희망으로 바꿔내는 그 에너지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던 일체감에서 온 것이다.
한용운 선생의 시집『님의 침묵』이 나온 지 100년이다. 100년이 지나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달라졌는데도 시어는 여전히 빛난다. 『님의 침묵』 군말(서문)에서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님만 님인 것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 그리움은 애별리고(愛別離苦)의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내가 앓아야 하고 견뎌야 하고 풀어야 하고 품어야 하는 것을 일깨우는 그림자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듯 그리움은 또 바람이 되어 ‘나’를 자극하고 일깨우며 ‘나’를 키운다. 서정주 선생의 ‘자화상’에서처럼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다.”
눈으로만 보면 지나가거나 쓸고 가며 공격수처럼 보이는 바람, 그러나 마음으로 보면 내가 풀어야 하는 것을 알려주며 내 품을 키우고 있는 그 바람! 그 바람은 늘 외부에서 불어온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이런 물음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혹 내가, 우리가, 누군가의, 무엇인가의 바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프랑스의 사회학자 라투르는 행위자 연결망 이론의 대가다.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은 4월부터 6월 14일까지 매주 일요일, 『라투르』의 저자인 사회학자 김환석 교수의 ‘브뤼노 라투르’ 강의를 열고 있다. 왜 라투르일까. 라투르는 무엇보다도 기후 위기 때문에 주목받고 있는 학자다. 우리도 벌써부터 걱정이 아닌지. 이번 여름은 또 얼마나 덥고 또 얼마나 길까, 해서. 에어컨 속에 숨어 기후위기의 현실을 잊을 수 있을까. 5월에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온 친구의 첫 마디는 너무 더웠다, 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뚜렷한 사계절로 아름다웠던 반도의 길고 긴 시간들을.
그동안 인류는 생각 없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왔다. 그 착취를 견디다 못한 지구는 폭염과 폭우로 인간사회를 역습하고 있다. 지구는 단순히 인간이 착취해도 되는 죽은 땅이 아니다. 기후위기는 생각도 없고 배려도 없는 인간의 착취에 강렬하게 반응하며 되받아치고 있는 지구의 몸부림이다. 예전 같지 않은 지구, 예전 같지 않은 기후, 예전 같지 않은 사계절, 모두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남겨놓고 떠난 님의 빈자리가 아닐까.
남해 물미해안 아침 산책길에서 우연히, 일출을 경험한 적이 있다. 갑자기 수평선에서 해가 쑤욱, 올라오는 것이었다. 바다가 해를 낳고 있다는 말은 저럴 때 쓰는 것이었다. 그때의 설렘이란! 심장은 마구 뛰고 나는 저절로 두 손을 모았다. 기원도 사라진 기도, 그것이야말로 경외였다. 바다에서 올라와 천지에 뿌려지는 아침 햇살 속에 나도 있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경이로웠는지. 그것은 나를 압도하는 생명의 경험, 일체감의 경험이었다. 누가 해에게, 해를 낳은 바다에게, 바다까지 품은 대지에게, 그 모두를 안고 바람을 만들며 돌고 있는 지구에게 생명이 없다고 할 것인가. 대지에 기대 살며 햇살과 함께 자라는 우리가.
지구는 품이 넓다. 품 넓은 이가 견디다 못해 뒤척이면 우리는 품을 잃는다. 이제 생각 없이 착취해왔던 지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마음으로 살펴야 한다. 라투르의 ‘가이아 마주하기’다. 지구는 인간이 함부로 자원을 뽑아 써도 되는 생산 자판기가 아니라 우리가 저지른 일에 상호작용하는 생명의 존재다. 인간처럼 말할 수 없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되는 그 목소리를 번역하여 대변하지 않으면 우리 삶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우리는 기후 시스템, 미생물, 바이러스, 혹은 플라스틱 같은 인공물들이 인간의 행위를 제약하고 역사를 바꾸는 말 없는 주체임을 인지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만일 강이나 토양 혹은 미래세대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대변해야 합니다.” 김 교수의 말이다.
여전히 님은 침묵한다. 다시 만날 날의 희망을 짓밟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그 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영영 이별할 것인가.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돌기만 한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이 되지 않으면? 미국의 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의 말이 무게가 실린다.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지구의 종말을 상상하는 일이 훨씬 쉽다.”<이주향, “ 님의 침묵 100년, 가이아의 역습”, 중앙선데이, 2026.6.13일자.>



댓글 0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