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이 남긴 것
40여 년 세월 동안 도시도 변해 행정의 중심에는 언제나 주민이
1988년 3월. 갓 2년 차 공무원이었던 필자는 대전 서구청 개청 멤버로 첫발을 내디뎠다. 새롭게 출범하는 자치구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던 그 시절,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인연이 38년 넘게 이어져 공직생활의 시작과 끝을 모두 서구와 함께하게 될 줄은.
공직생활의 끝자락에 선 지금, 문득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다. 우리는 흔히 공직을 직업이라고 말하지만, 내게 공직은 단순한 생업이 아니었다. 주민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고민하고, 지역의 미래를 위해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때로는 주민들의 질책을 들으며 다시 현장으로 향하는 시간이었다. 결국 공직은 사람을 향한 책임이었고, 지역을 향한 약속이었다.
40여 년의 세월 동안 도시도 변했고 행정도 변했다. 종이 서류가 전산시스템으로 바뀌고, 주민들은 손안의 휴대전화로 행정서비스를 이용하게 됐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행정의 중심에는 언제나 주민이 있다는 사실이다.
공직생활 중 기억에 남는 경험은 대전시 여성정책과에서 근무하던 시절이다. 당시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와 양성평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여성정책위원회 설치와 여성문화센터 확충 등의 정책을 추진하며 여성의 역량을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연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에는 작은 변화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행정이 지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특히 서구는 내게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서구의 태동을 지켜봤고 성장의 과정을 함께했다. 도시가 확장되고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바라봤으며, 주민들과 기쁨과 어려움을 나누며 걸어왔다. 그래서 서구는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내 삶의 중요한 일부이자 함께 성장해 온 터전이다.
공직생활 동안 승진과 경쟁, 수많은 평가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늘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음속에 오래 품어온 말이 있다. 바로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다.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은 서두르지 않지만 결국 바다에 이르고, 낮은 곳으로 흐르며 만물을 이롭게 한다. 나 또한 앞서기보다 함께 가는 것을, 자신의 성과보다 동료와 후배를 배려하는 것을, 권한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것을 공직자의 자세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이제 오랜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인생의 장으로 향한다. 공직자의 이름표는 내려놓지만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내려놓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서구의 거리를 다시 걸으며 "참 살기 좋은 도시가 되었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지난 세월의 보람은 충분할 것이다.
끝으로 후배 공직자들에게는 주민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공직의 본질을 잊지 말아 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주민 여러분께는 그동안 보내주신 믿음과 응원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비록 공직자의 자리에서는 떠나지만, 서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언제나 이 지역의 더 나은 내일을 응원하겠다.<김낙철 서구 부구청장,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이 남긴 것", 대전일보, 2026.6.17일자. 2026.6.17일자.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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