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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6주기를 맞이하며

신상구 | 2026.07.25 13:30 | 조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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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6주기를 맞이하며

 

  지난해 12월 31일, 1950년 대전 산내골령골에서 학살당한 학암 이관술 선생이 ‘정판사 위폐 조작사건’으로부터 79년 만에 무죄를 확정받은 것을 알리는 고유제가 열렸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명성을 날리던 이관술 선생은 해방 후 서훈을 받기는커녕 1946년 5월 미군정에 의해 ‘정판사 위폐 사건’이라는 이름의 사건으로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사건 재심이 무죄판결을 받고, 해당 사건은 ‘미군정 통화 위조 조작 사건’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관술 선생의 명예는 회복되었지만, 한국전쟁 직후 대전형무소에서 산내골령골로 끌려와 학살된 선생의 유해는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다가오는 6월 27일,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6주기를 맞는 골령골의 무게는 그래서 더 무겁다.

  산내골령골은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20여 일간, 법적 절차 없이 충남지구 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 국가권력에 의해 최소 1800명, 최대 7000명의 민간인이 학살돼 암매장된 곳이다. 골령골에는 대전형무소 재소자, 국민보도연맹원들이 뒤섞여 있다. 특히 대전형무소 재소자에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에 의해 투옥된 독립운동가들,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항쟁에 나섰던 제주4·3사건 관련 재소자들과 제주 토벌을 거부하고 봉기한 여수14연대 군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2020년부터 본격화된 발굴로 지금까지 수습된 유해는 1472구. 신원이 확인된 이는 단 5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같은 시기 같은 국가권력의 칼자루를 쥐었던 이들의 운명은 피학살자들의 운명과 완전히 달랐다. 제주4·3 당시 초토화 작전에 참여해 북촌학살을 자행한 제2연대장 함병선은 대전현충원 장군 제1묘역에 안장돼 있다. 여순항쟁 여수지구계엄사령관을 지낸 송석하 역시 같은 묘역에 있다.

송석하는 만주국군 소위와 간도특설대 복무 전력으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인물이다. 신현준, 백선엽 또한 간도특설대 출신의 여순항쟁 토벌군이었으나 마찬가지로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다. 가해자는 예우 받고, 피해자는 이름조차 없이 흙 속에 뒤엉켜 있는 이 비대칭이 76년째 계속되고 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후 실권을 잡은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전쟁과 재임 기간 수십만 명의 정적들을 희생시켰다. 하지만 최근 스페인은 2019년 독재자 프랑코의 유해를 ‘전몰자의 계곡’에서 파묘하여 이장하였고, 2022년에는 ‘민주주의기억법’을 재정하여, 1936년 내전 희생자들의 유해를 국가 차원에서 발굴하고, 신원 확인과 명예 회복을 제도화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친일·학살 가해자가 묻힌 양지바른 현충원과 피해자가 묻힌 어둡고 습한 골령골은 대전의 양극단에서 대비적인 모습을 보인다. 가해자를 ‘호국’의 이름으로 기억하면서, 피해자의 신원은 확인조차 못한 국가를 정의로운 국가라 부를 수 있을까?

  다행히 변화의 조짐도 있다. 이관술 선생의 재심 무죄에 이어, 충남 서천의 백락용·백락정 형제도 78년 만에 미군정 포고령 위반 무죄를 받았다. 진실화해위 3기가 출범했고, 골령골에는 중단되어 있던 ‘진실과 화해의 숲’ 조성이 추진될 가능성이 보인다. 76주기를 맞아 6월 27일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대전 동구 산내 골령골 현장에서 제27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가 열린다.

   가해자의 비석은 현충원에서 여전히 빛나는데, 희생자는 비석은커녕 유해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명과 암이 대비되는 대전현충원과 대전산내골령골. 대전 시민들이 이날 골령골을 찾아 그 비대칭의 무게를 함께 짚어보며 나아가 피학살자들의 그리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는지 한번 귀 기울여봄이 어떨까?<정성일,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6주기를 맞이하며”, 충남일보, 2026.6.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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