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잠잠
도종환 시‘설선당’읽으며 ‘말이 너무 많았다’되새겨 사람이 나이는 쉽게 먹지만 담백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 말수 줄이려 할수록 많아져 감정 누르며 수련해볼 생각
도종환 시인의 새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열림원)를 읽다가 ‘설선당(說禪堂)’이란 작품에 눈길이 멎었다. “오래되면 색깔이 엷어진다. 깊어지면 담백해진다. 천은사 설선당이 그렇다. 그동안 색깔을 너무 드러내려 했다. 그동안 말이 너무 많았다.” 갑자기 지리산 천은사 설선당의 모습이 궁금해져 사진을 찾아보았다. 해묵어 색이 바래다가 거의 무심의 경지에 이르러야 담백함이 깃든다. 욕심을 걷어내고 말을 줄여서 정신의 흰 뼈만 남은 경지다. 그저 해묵어 낡은 것과는 다르다. 사람이 나이는 쉬 먹어도 담백해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시 내용이 와 닿아서 흰 종이를 꺼내 붓글씨로 옮겨 적었다. 글씨를 쓰고 나서도 먹물이 남았길래, 다른 종이에 ‘잔잔잠잠’이란 네 글자를 한글로 다시 썼다. 잔잔하게 살면서 잠잠하게 말수를 줄여 최대한 가라앉혀 남은 생을 건너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얼마 전 강연차 대구로 내려가는 길에 바람을 쐴 겸 아내와 모처럼 나들이를 함께했다. 아내나 나나 어린 시절 대구에서 살았다. 아내는 어린 시절 떠난 이래 근 50년 만에 처음 가보는 대구행이어서 조금 설렘이 묻어났다. 기차에서 여유 있게 도착할 테니 어디를 들르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를 소곤소곤 얘기했다.
옆 좌석의 두 분 아주머니도 여행이 즐거운지 연신 대화가 이어진다. 가방을 열어 배도 깎아 먹고 대화는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로 넘어간다. 간밤 잠이 부족했던 나는 졸음 사이로 끼어드는 그녀들의 대화가 슬며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입이 궁금했던지 이 보따리 저 보따리 싸 온 과일 그릇을 꺼내 열고 닫고 한다. 눈을 감고 있다가 옆자리에서 연신 들려오는 말소리 사이의 비닐봉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그만 인내심이 바닥나고 말았다.
한마디 하려는 참에 옆에 있던 아내가 내게 말을 건네온다. 나도 건너편에 말하려던 서슬이 있어서 “당신 말을 좀 그만해요”하고 나직이 쏘아붙였다. 아내는 그 말에 기분이 확 나빠져서 고개를 획 돌려 버린다. 결국 못 참고 옆 좌석에 한마디 했다. “너무 시끄럽잖아요. 조금만 조용히 해 주세요.” 그녀가 순간 당황해 아무 말도 못했다. 기차 안의 공기가 싸해졌다. 우리가 대구역에서 내릴 때까지 그녀들의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기차에서 내리고 나서도 아내의 표정이 계속 좋지 않았다. 모처럼 즐겁게 추억 여행을 하자고 함께 와놓고 이건 아니다 싶어 아까 일을 정식으로 사과했다. 정작 아내가 화가 났던 이유는 내가 자기에게 한 말보다 내가 옆자리에 대고 한 말과 태도 때문이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인내심이 없어. 우리 내릴 때 옆 좌석 두 사람의 눈빛도 못 봤어. 내가 뒤통수가 뜨거워서 혼났네. 사람이 왜 그렇게 자꾸 화를 내. 그게 그렇게 정색하고 화낼 일이야!”
사실 나도 막상 말을 해놓고 조금 심했나 싶어 꺼림칙하던 참이었다. 나올 때 “아까는 미안했습니다. 잠을 못 자서 조금 예민한 상태였어요”라고 말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냥 나왔고, 그 점을 아내가 아프게 지적했으므로 꼼짝없이 한 번 더 아내에게 사과했다. “당신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그렇게 기분대로 행동해. 그러다가 무슨 일 날까 봐 겁나. 제발 그러지 마. 이래서 함께 나오기도 싫어!”
도종환 시인의 시에서 “그동안 말이 너무 많았다”라고 한 대목이 그래서 더 목에 컥 걸렸던 모양이다. 말수를 줄이고 감정을 누르고 더 잔잔하고 잠잠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나도 몰래 나왔다. 나이가 들면서 감정 조절이 잘 안 된다. 까닭없는 분노가 불쑥불쑥 일어난다. 연구실이나 길을 가다가 하는 혼잣말도 그 내용을 따져보면 내가 불합리하게 당했다고 생각되는 일들에 대한 중얼거림이다. 대놓고 하지 못했던 말들이 혼잣말이 되어 허공에 떨어진다. 막상 그들 앞에서는 하지도 못했던 말들이다.
‘잔잔잠잠’ 글씨를 찍어 외우 권오영 교수에게 카톡으로 보내자 대뜸 “만년에는 고요함만 좋아하는 법, 세상일은 마음에 두지를 않네.(晩年惟好静, 萬事不關心)”라는 왕유(王維)의 시구로 답장이 왔다. 내가 이를 받아 “고요 속에 도서만이 눈앞에 늘 있고, 혹시 영욕 찾아와도 아예 관심 없다네(靜裏圖書常在眼, 倘來榮辱不關心)”란 옛 시의 다짐으로 다시 보냈다. 잠시 후 그이가 다시 “한가해야 달사(達士)라 할 수 있겠고, 바쁘면 인생이 피곤해지리(閒方為達士, 忙只是勞生)”로 응답해 왔다. 내가 지난번 기차에서 있었던 일의 반성을 겸해 “고요히 앉았자니 몸 가뜬하고, 말이 많자 기운이 절로 상하네(靜坐身彌適, 多言氣自傷)”의 옛 구절로 이날의 카톡을 마무리 지었다.
말수를 줄여야 하는데 앉아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말하는 빈도가 다른 사람보다 늘 더 많다. 말을 꺼낸 사람의 이야기에 호응하려 시작한 말이 자꾸 늘어진다. 정신을 차려 입을 다물자 해놓고 어느새 또 끼어드는 나를 보고 주춤한다. 윗사람과 있는 자리라면 덜 하겠지만, 동년배나 아랫사람과의 자리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그래 봤자 참 아는 것 많네 하는 소리밖에 못 들을 텐데, 왜 그렇게 자꾸 말이 많아지는지 나도 나를 좀 따져봐야겠다.
잔잔잠잠! 써둔 글씨를 벽에 세워 놓고 말수 줄이기 수련에 돌입할 각오를 다져본다. 시인의 말마따나 나는 ‘그동안 말이 너무 많았다’.<정민, “잔잔잠잠”, 문화일보, 2026.7.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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