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의 자필 노트와 '반도체 매국'
삼성 기밀 빼돌린 중국 CXMT
핵심 기술인데 법원은 솜방망이
美·대만은 중형, 韓은 6년4개월
안 바뀌면 도둑질 또 등장할 것

요즘 반도체 업계를 가장 뒤흔드는 이름은 삼성전자도, SK하이닉스도, 마이크론도 아니다. 중국의 CXMT(창신메모리)다. CXMT는 지난달 27일 중국판 나스닥인 커촹판에 상장해 첫날 주가가 460% 넘게 폭등하며 중국 본토 시총 1위 기업이 됐다. 반면 다음 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14% 안팎 폭락했다. 한때 ‘2류’로 평가받던 기업이 한국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위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성장의 밑바탕에는 ‘도둑질’이 있다.
CXMT의 성장 뒤엔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 엔지니어들의 노력뿐 아니라 삼성 로고가 그려진 12장의 자필 노트가 있다. 그 안에는 D램 공정 600단계 기밀 정보가 담겼다. 작성자는 삼성전자 D램 개발 핵심 연구원이던 A씨다. 그는 2016년 CXMT 이직 전 이 노트에 삼성의 1조6000억원 투자가 들어간 18나노급 D램 기술을 빼곡히 옮겨 적었다. 기밀을 빼돌린 대가는 기존 급여의 3~5배, 고급 아파트 주거비, 자녀의 국제학교 학비였다.
이는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범죄다. 먼저 삼성에서 이직한 B씨는 A씨 같은 인재를 계속 뽑아왔고, 수년간 최대 30억원의 급여와 주거비를 지원하며 기밀 유출을 진두지휘했다. CXMT는 A씨가 빼온 기술을 바탕으로 2023년 중국 최초로 18나노 D램 양산에 성공했고, 자체 미세화로 현재 주력인 16나노급까지 왔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추격하는 지름길을 30억원에 내준 셈이다. 명백한 매국 행위다.
기술 유출범들도 중국에서의 ‘장밋빛 미래’는 영원하지 않음을 안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처음엔 파격 대우를 받지만 2~3년 뒤 ‘팽’ 당할 걸 다 안다. 그래도 징역은 짧고, 숨겨놓은 돈은 남는 게 이 범죄의 구조”라고 했다. 약한 처벌에 이런 ‘도박’은 계속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작년 반도체 등 국가핵심기술 유출 8건을 포함해 179건의 기술 유출 범죄가 단속됐다. 최근 5년간 산업계가 본 피해는 23조원(재계 추산)에 달한다.
이 도박판의 물주는 관대한 처벌이다. 국민 열에 아홉은 대처법을 알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최근 조사에서 응답자 90.7%가 “핵심기술 해외유출 처벌 수준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미국은 항공기 엔진 기술 유출에 징역 20년을, 대만은 TSMC 유출에 10년형을 선고했다. 중국조차 반도체 설계 탈취에 최대 5배 배상 규정을 공포했다. 하지만 국내 기술 유출 역대 최고 형량은 12장짜리 자필 노트 사건의 B씨가 받은 6년 4개월에 불과하다. A씨는 아직 체포되지도 않았다. 기술로 먹고사는 나라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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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식재산처가 반도체·AI 유출을 전담하는 기술유출특별사법경찰과를 신설하는 등 법 집행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지만, 법원은 여전히 솜방망이 판결을 내린다. 중국 업체로 이직하려고 SK하이닉스의 이미지센서 기술과 영업비밀을 빼낸 김모씨는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만 선고받았다. 삼성디스플레이 전 직원 4명은 중국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넘긴 혐의에도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2024년 국가핵심기술 국외 유출의 양형 기준이 최대 징역 18년으로 상향됐지만, 실제 판결은 징역 1년 6개월과 영장 기각이었다.
정부와 사법부는 유출자가 얻은 이익 이상의 벌금과 자산 몰수를 통해 ‘숨겨둔 돈이 남는 장사’라는 계산부터 깨야 한다. 기업 스스로도 기술 유출의 공급선을 차단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기밀을 분절화해 개인이 전체 흐름을 보지 못하게 관리하는 것은 기본이고, 떠날 이유가 없도록 보상 등 처우 개선에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2장짜리 노트는 언제든 다시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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