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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송재시고(撫松齋詩稿)

신상구 | 2026.08.14 15:27 | 조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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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송재시고(撫松齋詩稿)

 

  내 평생의 스승 산정 서세옥 선생은 책 한 권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셨다. 이름하여 무송재시고(撫松齋詩稿). 무송재는 선생댁 택호이다. 자작 한시들을 모아 옛 서책 장정 방식으로 묶어 펴내신 것인데, 비매품인 데다가 지인들만 소장할 수 있게 하여 세상은 그 어른의 책 출간을 거의 알지 못했다. 떠나신 지 어느새 6년인데 이 책을 나는 서가의 가장 귀한 곳에 두고 스승을 뵙는 듯 한 번씩 꺼내 보곤 한다.

  화가인 산정 선생께서 시를, 그것도 한시를 쓰신다는 사실은 세간에는 잘 안 알려졌다. 하지만 선생께서는 전각 작업과 더불어 시작(詩作)을 화업 못잖은 또 다른 필업(筆業)으로 생각하셨다. 그 어른은 이미 40대에 시·서·화의 정점에 서 계셨다. 이 점에서 선생은 우리 현대 화단의 독보적인 분이라고 생각한다. 한시는 단지 한학의 경지가 높다거나 문학적 감성이 뛰어나다는 것만으론 이뤄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인생의 온갖 경륜과 서사가 녹아 있다. 동양에서 다양한 문장 세계 중 시를 최고의 경지로 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학에 계실 땐 학과 사무실에서 “김 선생, 방금 시를 한 수 지었는데 들어보시겠나” 하시면서 낭랑한 음성으로 운율을 넣어서 낭독해 주시곤 했다. 우리 대학 학과 사무실 너머로는 매화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선생께서는 매화가 꽃을 피울 즈음이면 매화음(梅花吟)을 오언절구로 작시하시곤 했다. 모시고 떠났던 중국에서도, 남도 여행길의 기차간에서도, 인사동 찻집에서도 시상이 떠오르면 작은 종이를 청해 즉흥시를 쓰시곤 했는데, 이 시들까지 다 묶어내셨다면 몇 권은 족히 될 것이다.

  선생은 시뿐 아니라 언술(言術)의 귀재이기도 하셨다. 적재적소에 딱딱 들어맞는, 그것도 옛 선비 사회에서나 씀 직한 언어들을 쓰시곤 했다. ‘종이’를 ‘조이’라고 하셨고, ‘표구’를 ‘장황’이라는 옛 이름으로 부르셨다. 때로는 그 일상어가 바로 시였다. 게다가 해학성과 비유가 일품이었다. 사람들이 와글대는 카페에 자리하시고서는 “거참, 비 온 뒤에 개구리 울 듯 소란하구먼”, 오찬을 함께하신 후 “선생님 가시지요. 제가 계산했습니다” 하면 “동작이 비호같군. 자네의 젊음이 부럽네”라고 하셨다. 가끔은 빙그레 웃음이 나오는 말씀도 하셨다. 내가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와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말씀하셨다. “자네가 그 위험한 곳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네.”(물론 잘 주무셨을 것이고 말고다) 신혼 때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자네가 경제의 안정을 못 이룬 채 동가식서가숙하고 다니니 내 걱정이 태산일세.”

  선생의 교수법 또한 시적 은유와 비유로 일관하셨다. 창작은 고단한 일, 빈 땅을 찾아 여긴 내 땅이요 하며 깃발 하나 꽂는 일이라 하셨고, 누군가를 모방하거나 창의성이 떨어진다 싶은 학생 작품 앞에서는 남이 씹다 버린, 단물 다 빠진 껌을 다시 씹고 있구먼 하고 일침을 놓으셨다. 내가 졸업미전 준비로 삼백여 호의 군상을 제작할 땐 뒤에 오셔서 물끄러미 보시더니 “그림은 크기가 문제 아니라, 궁상각치우요 오케스트라라는 것을 잊지 마시게” 하고 지나가셨다. 전통 음계의 궁상각치우와 오케스트라라는 현대어를 함께 구사하시는 어른이 선생이셨다. 정초에 세배꾼 제자를 맞으실 때는 반드시 사모님과 함께 격식에 맞는 단아한 한복을 입으셨는데, 가끔 나와 함께 외출하실 때에는 아주 세련된 현대적 패션 감각을 보이시는 멋쟁이셨다. 선생의 작품 세계 또한 오직 물과 종이와 먹의 전통 재료로 시종하면서 순간적으로 현대적 감각의 다양한 변주를 이루어내는 또 하나의 시였다.

  동시대의 아시아 3국을 뒤져도 선생처럼 절묘하게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작가를 나는 보지 못한다. 1993∼1994년 무렵, 나는 몇몇과 함께 선생을 모시고 장강삼협(長江三峽)을 떠가는 일주일간의 중국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여행은 거의 중국의 역사와 문학·예술에 대한 압축된 수업시간이기도 했다. 정말 선생은 문사철예에 두루 밝으셨고 거침이 없으셨다. 그 점에서 나는 일찍부터 선생의 훈도를 받았던 것을 평생의 지복으로 생각한다. 이십 대의 내게 당신의 스승 근원(화가 김용준) 선생에 대해 들려주셨던 것처럼 오늘 나는 나의 스승 산정 선생의 방대한 인문과 예술 세계를 나의 어린 제자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어느새 신세대에게 신화와 전설이 되고 있는 나의 스승. 세상 떠나셨지만, 여전히 내게는 현전으로 살아계신 분. 선생은 1970년대의 어느 날, 복도를 지나던 이십 대의 나를 막 새로 지으신 성북동 무송재로 부르셨고, 그날 추사 선생의 주련(柱聯)과 시 세계에 관해 설명해 주셨는데 이것이 스승과의 50년 인연의 출발이었다. 그날 노송 사이로 슬몃 고개를 쳐든 한옥 무송재의 격조 높은 품새를 나는 어제인 듯 기억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50여 성상 동안 단 한 번도 언짢은 내색 없이 서툴고 실수투성이였던 제자를 말없이 품어주셨던 스승. 그 스승님과 사모님, 두 어른을 잊을 수가 없다. 이 나이가 되었어도 가끔은 멈춰 서서 선생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고 여쭙고 싶은 분. 이제 어느덧 옛 스승처럼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린 제자는 그 스승이 그리울 때마다 남기고 가신 책 ‘무송재시고’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기병종, “무송재시고(撫松齋詩稿)”, 문화일보, 2026.8.14일자.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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