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니스트·문학박사
5월의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어린이날, 충주 시내를 관통하는 남한강의 물줄기가 유난히 반짝였다. 동요 「감자꽃」의 작가 권태응의 고향 모습이다.

권태응은 1918년 충주 칠금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문학적 환경 속에서 자랐고, 경성고보 시절에는 ‘UTR 구락부’에서 등산과 토론 활동을 통해 식민지 교육의 부당함을 비판하고 민족의식을 다졌다. 또 일본인 교사의 모욕적 언행과 친일적 발언에 맞서 집단행동까지 감행했다. 이후 일본 유학 시절 그는 비밀결사 ‘33회’ 활동에 참여해 조선의 독립과 사회 변혁을 시도하다가, 1939년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는 과정에서 폐결핵에 걸렸고, 병보석으로 풀려나 귀국하였다. 그는 요양과 투병 생활 속에서 사랑과 결혼을 이루고, 고향으로 돌아와 야학과 연극 활동을 펼치며 민중과 호흡하는 삶을 이어갔다. 이렇듯 권태응은 단순한 동요 작가가 아니라 식민지 현실에 조직적으로 저항한 독립운동가였다.
권태응의 삶이 굴곡지고 어려워질수록, 그의 문학은 아이러니하게도 점차 내면화되고 따뜻해졌다. 해방 전후로 소설을 쓰던 그는 1947년부터 동요를 발표하며 동심의 세계로 들어섰고, 1948년 동시집 『감자꽃』을 펴냈다. 그의 시는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한 지식인의 깊은 성찰과 아이들에 대한 희망을 꾸밈없고 정직한 삶의 감각으로 담아냈다. 이후 1951년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우리나라 아동문학을 이끈 ‘동요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윤석중은 권태응이 남긴 동요가 문학적으로 제대로 평가받기를 바라며 윤동주와 같은 자리에서 권태응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권태응의 삶과 정신은 재조명되어 2005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고, 그의 문학적 발자취는 그의 고향인 충주에서 마치 제 뿌리를 내린 감자알처럼 단단하게 박혀 「감자꽃」이 활짝 피고 있다.

필자는 먼저 그가 태어난 충주시 칠금동 381번지 생가터를 찾았다. 생가의 가옥은 헐려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생가는 밭으로 개간된 상태이고, ‘동천 권태응 선생 생가터’ 표지비만이 선생을 그리워하며 기리고 있었다. 생가터 표지비에 새겨진 글처럼, 그는 이 풍경 속에서 상상력을 키웠고, 아이들을 향한 애정을 품었다. 그의 대표 시 「감자꽃」 이외에도 「고추밭」, 「율무」, 「옹달샘」, 「도토리들」 등과 같은 시편들이 모두 이 땅의 흙냄새를 품고 있다.
다음은 그의 모교인 교현초등학교 화단을 찾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는 화단 앞에서 「감자꽃」 역시 밝게 웃고 있었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 권태응, 「감자꽃」 전문
이 짧은 노랫말 속에는 거짓 없는 자연의 질서와 아이들의 솔직함이 담겨 있다. 알록달록한 감자꽃을 바라보며, 그는 세상의 이치를 가장 단순한 말로 풀어냈다. 그것은 어쩌면 복잡한 시대를 견디며 얻어낸 가장 간결하고 맑은 깨달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음은 충주시 금릉동 팽고리산에 있는 그의 묘소이다. 여기에도 「감자꽃」 동시비가 세워져 감자꽃을 피우고 있다. 상석 앞에서 잠시 고개 숙여 그를 추념하고, 동시비를 보며 시인의 넋을 기렸다. 5월의 햇살이 묘역을 따스하게 감쌌다.
돌아오는 길에는 악성 우륵과 장군 신립이 있는 탄금대 공원으로 향했다. 남한강과 달천강이 만나는 그 너른 물길 앞에도 그의 「감자꽃」 노래비가 활짝 피어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릉동 그의 묘소에서 이곳 「감자꽃」 노래비까지 3.4㎞를 최근에 충주시가 ‘권태응 동시길’로 조성하였다. 이 문학산책로에는 권태응의 대표 작품을 담은 시화판 7기를 설치해 시인을 기리고 있다. 이제 지역 숙원사업인 권태응 문학관 건립만 남은 셈이다. 이것 역시 잘 마무리되길 기원한다.

권태응은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서도 민족의식을 지키려 했던 청년이었고, 옥고와 병마를 견디면서도 끝까지 아이들의 노래로 세상을 어루만진 시인이었다. 비록 그의 삶은 짧았지만, 굳이 캐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 거짓 없이 드러나는 진실의 세계를 담은 그의 동요 「감자꽃」은 긴 시간의 강을 건넌 오늘까지도 그의 고향 곳곳에서 활짝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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