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세계가 관심, 물 들어올때 노 저어야
동아일보 ‘책의 향기’에 정기 코너 ‘이 책 환상적이야’를 연재하는 정보라 작가(50)와 연락할 때면 서너 번에 한 번꼴로 ‘로밍 발신’ 표시가 뜬다. 2022년 소설 ‘저주토끼’로 영국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뒤 그는 해외에서 가장 많이 초청하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이 됐다. 8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정 작가는 “지난 4년간 15개국, 32개 도시를 다녔다”고 했다. 지난달 출간한 ‘저 지금 탑승합니다’(위고)는 그런 해외 출장기를 담은 에세이다.
최근 출판계에는 ‘K문학’ 낭보가 잇따른다. 해외 출판사와의 선인세 계약이 화제가 되고, 한국 소설이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됐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하지만 정 작가의 세계출장기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는 해외에서 그 나라 집회에 참가하고, 프랑스 팡테옹 지하 묘지를 찾았다가 변희수 하사의 삶을 떠올린다. 유명 관광지를 돌아보는 대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유심히 관찰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목소리를 낸다.
“그냥 원래 살던 대로 살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정 작가의 답은 꾸밈없었다. 실은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 지명 소식을 들은 날도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전쟁 반대 집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고 한다. 지하철에서 “지금 심경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춥고 배고프다”고 답했다.
출장기를 쓴 방식도 그답다. 여행지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그곳을 오가던 시기에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함께 적었다. 2022년 출장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0월 이태원 참사 등 그해의 사건을 두 쪽에 걸쳐 먼저 적는 식이다.
현장에서 체감한 한국문학에 대한 분위기는 어떨까. 정 작가는 “나라마다 다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한국문학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해외 독자에게 한국문학을 소개할 때도 “‘이것이 진짜 한국문학’ 같은 식으로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세울 필요는 없다”며 “고전을 알려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조금은 벗어날 필요가 있고, 웹소설이나 대중 장르에 대한 폄하도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금 한국문학에 필요한 건 선별보다 확장이라는 생각에서다.
“한국어 문학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그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이것만이 예술이다. 이것만 해외에 내놔야 한다’고 할 때가 아니에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돼요. 팔리는 건 다 팔아야 돼요(웃음).”
책에선 특히 2023년 전미도서상 시상식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다. 정 작가는 후보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가자지구 폭격에 반대하고 인도주의적 휴전을 요청하는 성명서를 낭독했다. 시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존 리 클라크가 시청각장애인이어서 박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엔 참석자들과 함께 발을 굴렀다. 무대가 울리도록 다 함께 발을 구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정 작가는 그 장면조차 거창한 의미로 포장하지 않았다.
“무대에 올라가 말할 수 있다는 것도 특권이었어요. 특권이 있으면 말을 해야 하는 거예요. 안 하면 쓰레기인 거예요.”<김소민, “한국문학 세계가 관심, 물 들어올때 노 저어야”, 동아일보, 2026.9.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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