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권한·타이밍… ‘3박자’가 거인을 만든다
‘총·균·쇠’ 저자 다이아몬드 각 분야 주목받는 리더 선정 영웅이 된 조건·상황 등 분석
결정적 순간 막강한 권한 갖고 장소·시기 맞을 때 영웅 등극
인류 역사는 흔히 ‘지도자의 얼굴’로 기억된다. 아돌프 히틀러, 윈스턴 처칠, 넬슨 만델라 등… 이들의 이름을 빼놓고는 세계 근현대사의 굴곡을 논하기 어렵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제프 베이조스 없는 디지털 세상의 발달도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이름값의 환상을 걷어내보자. 과연 그들은 역사의 흐름을 바꾼 대체 불가의 주역이었을까. 지도자들의 실제 영향력은 어느 정도였고, 언제 발휘될 수 있었을까. 인류사의 흥망성쇠를 여러 관점에서 조망해온 재러드 다이아몬드 UCLA 명예교수는 7년 만의 신작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에서 이 같은 질문에 주목했다. ‘총·균·쇠’에서 문명을 결정짓는 지리·환경적 조건을 탐구하고, ‘문명의 붕괴’ ‘대변동’에서 사회 및 국가의 선택을 조명했던 그는 이번엔 집단이 아닌 개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자가 검증하고자 하는 명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한 명의 지도자가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건 ‘언제, 어떤 조건에서인가’다. 먼저 그는 지도자가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파악하기 위해 ‘자연실험’이라는 방법론을 끌어왔다. 정치 지도자의 사망이나 기업 CEO의 사직, 스포츠팀의 감독 교체처럼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와, 그렇지 않은 때를 비교해 지도자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방식이다. ‘아돌프 히틀러가 1930년 교통사고로 죽었다면 홀로코스트는 없었을까’와 같이 특정 인물에 대한 가정은 실험이 불가능하기에 지도자들의 ‘평균적인 영향력’을 측정하는 데 집중했다. 예를 들어, 한 연구팀이 1875∼2004년 정치 지도자의 사망 사건을 조사했더니 직후 수년간 국가의 평균 경제성장률에 변화가 있었고, 덴마크에선 기업 CEO가 사망한 후 기업 이익이 2년 내 13% 감소했다는 결과도 있었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지도자의 영향력은 유의미하다. 그렇지만 압도적이지는 않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신간에서 언급한 지도자들. (왼쪽부터) 보츠와나의 세레체 카마, 영국의 윈스턴 처칠, 미국의 스티브 잡스와 제프 베이조스. 김영사 제공·연합뉴스
하지만 평균적인 영향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좀 더 크고 특별한 변화를 이뤄내는 지도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저자는 개인 능력만을 비추지 않고, “능력과 기회, 우연과 환경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역사의 방향이 달라져 왔다고 강조한다. 대표적 예로 꼽은 인물이 1966년 취임한 보츠와나의 초대 대통령 세레체 카마(1921∼1980)다. 그는 나라에 22명뿐인 대학 졸업생 중 한 명이었고 서구 유학 경험도 있는 인물.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가 취임한 후 보츠와나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굴됐는데, 당시 카마는 최대 부족 바망와토족의 세습 족장이기도 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광물 수익을 자기 부족이 아닌 국가에 귀속시킨다는 ‘결단’을 내려 국가를 성장시켰다. 즉, ‘특정한 장소(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보츠와나)’에서 ‘특정한 시기(다이아몬드 자원을 발견한 1967년)’에 자신의 이점과 역량을 이용해 ‘현명한 결단’을 내린 덕에 국가의 미래를 바꿨다고 본 것이다. 그는 지도자의 대체 불가능성을 판별하고자 다이아몬드가 고안한 ‘햄릿 테스트’를 통과한 극소수 중 한 명이다.
저자는 지도자들이 ‘어떤 상황에서 실제로 차이를 만들어내는지’를 파헤친다. 우선 1940∼2000년 사이에 정치사에 변곡점을 만들어낸 22명의 지도자를 추렸다. 그러자 이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공통의 조건이 발견됐는데, 바로 자신의 ‘재량권’을 폭넓게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22명 중 15명이 별다른 제도적 견제 없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여기엔 독재자였던 경우는 물론, 처칠과 마거릿 대처처럼 민주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예외적인 권력을 부여받은 경우도 포함됐다. 경제 분야에서도 비슷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제프 베이조스 등은 기업을 창업한 덕에 과감하게 권한을 사용했고, 이것이 큰 차이로 이어졌다.
‘타이밍’도 지도자의 영향력을 구분 짓는 중요한 변수였다. 특히 어떤 지도자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를 기다렸다가 과감하게 선택하고, 그에 맞춰 행동할 경우 큰 변화를 불러왔다. 처칠은 재무장관 시절에는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총리가 된 후에는 독일에 맞서는 결단을 내렸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될 때는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1958년 국가적 위기가 필요로 하는 순간에 복귀해 영향력을 펼쳤다. 또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처럼 반대와 저항에 맞서 자신의 목표를 관철했을 때 지도자의 영향력이 더 강력하게 발휘됐다.
책은 스포츠와 종교의 영역으로도 넘어가 지도자를 비추는데 이들 역시 여러 조건이 맞물렸을 때 영향력을 발휘했다. 책은 “위대한 리더는 누구인가”를 넘어 “리더는 언제 위대해지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책 속 자연실험이 사회과학의 복잡한 변수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고, 일부 지도자의 사례를 단순화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인지현, "능력·권한·타이밍… ‘3박자’가 거인을 만든다", 문화일보, 2026.9-11일자.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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