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베스트셀러 목록은 19세기 말 대량 출판 시대에 등장한 뒤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고 열광하는지 보여 주는 지표이자, 아직 책을 고르지 않은 독자에게 무엇을 읽을지 권하는 큐레이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엔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책들이 목록에 오르면서 사재기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최근 출판가를 뒤흔들고 있는 유명 작가의 사재기 혐의는 이런 의혹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언어의 온도’로 170만 부를 판매한 이기주 작가는 산문집 ‘보편의 단어’를 베스트셀러로 만들기 위해 출판사 대표와 함께 2024년 3월부터 7월까지 1631권을 부당 구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해당 기간 전체 판매량의 약 14%로, 덕분에 책은 교보문고 분야별 주간 베스트셀러 3·4위권에서 2·3위권으로 올랐다. 사재기도 문제지만 1000여 권으로 순위를 움직일 수 있는 ‘위축된 출판과 초라한 책 읽기’ 현실이 더 씁쓸하다. 실제로 출판계에서는 하루 300여 권 팔리면 대형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20위권에 든다고 본다. 이번 사태는 ‘베스트셀러 목록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오랜 정의를 역설적으로 증명해낸 셈이다.
2025년 한국 성인 독서율은 38.5%로 1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성인은 10명 중 4명이 채 되지 않았다. 반면 지난해 신간은 6만4991종, 하루 평균 178종이 나왔다. 독자는 줄고 책은 쏟아지는데 베스트셀러 목록마저 믿을 수 없으니 독자들의 책 선택은 더 어려워진다. 게다가 대형서점의 평대와 온라인서점의 주요 노출 영역은 사실상 광고 마케팅 공간이 된 지 오래다. 독자의 선택으로 평가받아야 할 다른 책들은 관심에서 밀려나고 신생 출판사와 무명 저자는 독자에게 닿기 어려워졌다. 수만 종의 신간 앞에서 눈에 띄는 책이 독자의 선택인지, 광고의 결과인지, 조작된 순위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데다 독자가 순위를 믿고 고른 책에 실망한다면 이는 다시 독자를 책에서 멀어지게 한다.
최근엔 지인 추천이 강력한 큐레이션이 되고 있지만, 비슷한 취향과 관심사 안에서 이뤄진다는 한계가 있다. 서점은 판매량 집계 방식을 정비하고 순위 조작에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해야 한다. 출판계는 독자가 신뢰할 수 있는 공익적인 큐레이션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최현미, "책 사재기 악순환", 문화일보, 2026.9-15일자. 3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