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뉴스를 통해본 독립운동가 깁산의 아리랑
● 앵커: 일제 치하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수많은 청년들의 희생. 독립운동가 김 산이 쓴 아리랑이라는 책을 통해 비로소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책의 기록으로만 남겨진 김 산의 아리랑 노래가 처음으로 복원됐습니다.
김소영 기자가 전합니다.
● 기자: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펼치다 1938년 33살 나이에 암살당한 김 산.
공산당원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조국에서도 외면당한 그의 삶은 미국 작가 님 웨일즈의 책 아리랑을 통해 뒤늦게 빛을 보았습니다.
수감 중에 감방 벽에 손톱으로 가사를 새겼다는 그 아리랑이 3.1절을 기념해 70년 만에 복원됐습니다.
● 인터뷰: 그대는 열두 고개서 멈추지 마오.
● 기자: 민족의 마지막 수난인 열두 고개를 넘어 열 세 번째 고비라도 넘겠다는 의지가 결연합니다.
● 김연갑 이사: 불의에 대한 저항 그리고 우리는 어디를 가든 아리랑고개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넘는다고 하는 신념을 우리 조선인들이 갖고 있다.
● 기자: 나운규의 아리랑 영화음악에 맞춰 불렀다는 기록에 따라 아리랑명창 김영임 씨가 당시 곡조를 찾아 녹음했습니다.
● 김영임: 젊은 사람들과 모든 우리 국민이 알아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부르니까 저절로 정말 눈물 나오고...
● 기자: 특히 이번 음반에는 영어설명 함께 실어 외국인들도 아리랑에 담긴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MBC뉴스 김소영입니다.< 2007-2-28 22:50>
독립운동가 김산(金山, 1905.-1938)은 본명이 張志樂으로 1905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뒤 1920년 만주로 망명했다. 신흥무관학교를 거쳐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에서 일했고, 황포군관학교 수학 및 중국공산당 가입 후 광저우 폭동, 하이루펑 소비에트 등에 참여했다. 중국 옌안의 항일군정대학에서 물리학, 화학, 수학 등을 강의한 지식인이었으며, 혁명가적 신념을 지녔다. 1938년 중국공산당 내부의 숙청 과정에서 트로츠키주의자 및 일본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옌안에서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1983년 중국공산당으로부터 공식 복권되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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