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아버지’의 조건
10월 29일 세상을 떠난 배우 최불암은 ‘국민 아버지’로 불렸다. 데뷔 직후부터 노인 역을 맡았던 그에게 이 이름을 안긴 것은 MBC 드라마 ‘전원일기’(1980∼2002)의 양촌리 김 회장이었다. 서민적이고 소탈한 김 회장은 늘 깊은 정으로 가족을 품었다. 부드럽지만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었고, 엄격하되 다가가기 어렵지 않았다. 최불암 배우도 오래전 한 인터뷰에서 김 회장은 자신이 고집한 캐릭터라며 “권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늘 상대의 입장과 의견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희화화한 ‘최불암 시리즈’ 유머에 대해서도 “새로 정립돼야 할 가부장의 모습”이라며 “접근 가능하고 웃음도 주는 그런 존재로서의 어른이 필요하다”고 했다. 권위를 앞세우기보다 친근하게 다가가는 품 넓은 어른이었다.
‘국민 아버지’는 연기를 잘한다고, 아버지 역을 오래 맡았다고 저절로 얻어지는 이름이 아니다. 갖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화면 속 인물에 대한 애정이 배우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고, 여러 세대가 그를 ‘우리의 어른’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붙는 명예로운 이름이다. 실제로 고인은 ‘전원일기’ 김 회장의 금동이 입양을 계기로, 화면 밖에서 어린이 후원에 나섰고, 사단법인 제로캠프 이사장으로 소년수형자의 문화예술교육과 사회 복귀도 지원했다.
그를 보내며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난 또 다른 ‘국민 아버지’ 이순재가 떠오른다. 최불암이 소탈하고 푸근한 아버지였다면, 이순재는 깐깐하고 고집스러운 아버지였다.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로 가부장적 가장의 얼굴을 보여준 그는 ‘거침없이 하이킥’ 등에서 스스로 그 권위를 웃음의 대상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연기 앞에서는 후배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원칙주의자였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국민 아버지였지만, 그 이름을 지탱한 바탕은 같다. 연기를 위해 크고 작은 배역을 가리지 않으며 자기 일에 성실했고, 나이와 경력을 앞세우기보다 제 몫을 다했으며, 말보다 삶으로 보여주었다. 권위가 아니라 책임으로 얻은 신뢰였다. 어른에 대한 믿음을 주고 떠난 고인을 보내며 현실에서 스스로 어른임을 내세우지 않아도 사람들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의 빈자리가 새삼 크게 느껴진다. 국민 아버지의 명복을 빈다.<최현미, “ ‘국민 아버지’의 조건”, 문화일보, 2026.10.30일자.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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