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궤적, 예술가의 드로잉
전시장에 들어서면 나는 완성된 회화나 조각만큼 드로잉을 주의 깊게 본다. 작업실을 방문해서도 드로잉과 작업 노트를 유심히 살핀다. 간결한 선묘와 짧은 메모를 들여다볼 때면, 작가가 자신에게만 남긴 기록을 훔쳐보는 듯한 설렘이 있다. 오랫동안 작가들을 지켜보며 나는 그 작은 편린들에서 삶의 흔적뿐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탐색하고, 자신의 감각을 어떻게 단련해왔는지를 읽곤 했다.
작가의 감각과 생각 남겨져 있어 부르주아는 생각의 깃털로 정의 완성작 못지 않은 드로잉의 가치
루이스 부르주아, ‘불면 드로잉’ 연작 중 57번, 1994~1995.
완성작을 위한 밑그림으로만 보기에는 드로잉의 세계가 내겐 시적이고 매혹적이다. 하지만 작가의 사유가 밀도 있게 느껴지는 드로잉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드로잉을 가까이 보는 일은 이미 알려진 작품의 외형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그 형상을 낳은 감각과 생각의 움직임을 살피는 일이다. 지워진 흔적과 반복된 선, 낙서와 메모, 개념을 정리한 도식 역시 드로잉의 일부다. 종이 위에는 무엇을 보았는지뿐 아니라, 그것이 작가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도 담긴다.
나는 특히 루이스 부르주아의 드로잉을 좋아한다. 거대한 조각보다 작은 종이 위의 선에서 작가의 고독과 체온이 더 가까이 전해질 때가 있다. 그녀는 드로잉을 ‘생각의 깃털’이라 부르며, 날아가는 생각을 붙잡아 종이에 옮기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1994~95년의 ‘불면 드로잉’에는 잠들지 못하는 밤의 이미지와 글이 남아 있다. 그리는 일은 상처를 고백하는 동시에, 그 상처에 압도되지 않으려는 시도였다.
그녀에게 드로잉은 평생에 걸쳐 기억과 욕망, 불안을 다루는 독립적인 작업이었다. 나는 그 선묘에서 연약함과 집요함이 공존하는 한 인간의 시간을 만난다. 그러나 드로잉을 작가의 내면이 비치는 창이라고만 생각하면 놓치는 것이 있다. 작가 자신도 그리기 전에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분명히 알지 못할 수 있다. 막연했던 감정과 기억은 선을 따라 형상을 얻으며 작가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드로잉은 생각을 보여주는 기록이면서, 그리는 동안 새로운 생각이 생겨나는 과정이다.
박이소의 드로잉 노트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생각이 수정되는 순간이다. 짧은 착상부터 설치 구상도, 망설임과 수정의 기록까지, 구상을 현실로 옮기려는 고민이 드러난다. 떠오른 생각을 그리는 일과 그것을 실제 공간에 구현하는 일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 거리를 좁히는 동안 처음의 생각도 달라진다. 실현되지 못한 구상에서도 사유의 치열함을 읽는다. 완성작에서는 보이지 않는 갈림길이 노트에는 남아 있다. 그 궤적을 따라가며 나는 작가가 무엇을 선택했고 무엇을 포기했는지 헤아린다.
드로잉과 완성작 사이에서 작가의 내면과 형상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눈다. 2018년, 나라 요시토모는 30년간의 드로잉 작업을 회고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은 말을 글이나 편지처럼 그려왔다고 말했다. “숨 쉬듯, 메모하듯, 생각하듯” 그려왔다는 것이다. 노트뿐 아니라 봉투·신문·골판지 위에도 일상에서 떠오른 감정과 생각을 붙잡았다. 그에게 드로잉은 고유한 조형 언어를 다듬는 방식이자, 회화·조각과 함께 작업 세계를 이루는 주요한 축이다.
드로잉과 작업 노트의 가치를 간과하는 작가들에게 종종 아쉬움을 느낀다. 자신의 사유가 어떻게 자라고 달라졌는지를 되짚을 기회까지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는 이유는 달라도, 이들 작가에게서 내가 공통으로 읽는 것은 자신에게 다가온 질문을 붙잡고, 여러 갈래로 생각을 펼치며 그 의미를 더듬어가는 태도다. 중요한 것은 기록의 양보다는 그 안에서 자신의 감각과 생각이 계속 움직이고 있는가다.
예술가의 본성은 완성작의 형태만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무엇에 걸려 멈추었고, 어떤 판단을 뒤집었으며, 끝내 무엇을 놓지 못했는가에도 담겨 있다. 때로는 간결한 드로잉 하나가 그 긴 탐색을 시적 아포리즘처럼 응축한다. 내가 작은 종이 앞에서 느끼는 설렘은 그 안에서 아직 답을 찾고 있는 작가를 만나는 데서 온다. 완성작 앞에서는 결과를 보지만, 드로잉을 펼치면 거기에 이르기까지 흔들렸던 시간을 읽는다. 나는 작가가 지금도 자신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지 알고 싶다.<이준, "생각의 궤적, 예술가의 드로잉", 중앙일보, 2026.1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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